다문화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 동성 결혼이 다문화 현상이라고?
대학 광고 캠페인 수업에서 겪은 일이다. 대체로 이런 과목은 기말고사 대신에 과제 발표로 평가를 한다. 평가의 공정성을 위해서 담당 교수가 발표 심사를 부탁해와서 참석하게 됐다. 주제는 다문화 현상에 대한 캠페인 광고였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결혼 이주 여성이나 이주 노동자를 대상으로 캠페인을 만들어서 발표했다. 이제 다름을 이해하고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정부 부처에서 제작하여 방영 중인 다문화 인식 공익 광고도 대체로 그런 내용들이다.
그런데 중국 유학생은 아주 다른 작품을 내놨다. 그것은 동성 결혼에 관한 것이었다. 좀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선 다문화라고 하면 으레 한국에 정착한 결혼 이주민에 대한 것이려니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중국 학생들의 설명은 태연했다. 중국은 55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 문화가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동성 결혼 정도는 돼야지 다문화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다문화에 대해 얼마나 좁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평가하러 갔다가 중국 유학생을 통해서 한 수 배웠다.
두 번째 이야기, 다문화 시대에 웬 지역갈등?
영호남 문화교류를 위한 시민단체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광주의 시민단체와 부산의 시민단체가 1년에 한 차례씩 교차 방문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지역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행사를 하고 있는데 상호 방문을 통한 세미나도 그중 하나이다. 몇 년간 광주 주재를 했는데 이때 시민단체에 가입했고 서울로 온 후에도 이 활동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몇 년 전 전남 보성에서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의 일이다. 세미나는 통상적으로 1박 2일로 열린다. 판소리의 고장인지라 세미나 말미에 국악 공연이 있었는데 그때 출연한 여성 국악인의 한마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 농촌은 다문화 시대인데, 웬 영호남 지역갈등이냐? 외국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살고 있는데 지역 갈등은 문제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다. 농촌에는 결혼 이주민이 많이 들어와서 글로벌해진 지 오래다. 말도 통하기 어렵고 문화도 다른 외국 출신 이민자와 섞여서 살고 있는데 아직까지 지역 타령이냐는 것이다. 정말 글로벌한 사고방식이다. 우리나라에게 가장 세계화 지수가 높은 지역이 농촌이란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었다. 글로벌 사고방식의 척도는 외국 사람과 일상생활을 조화롭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농촌지역은 가장 앞서 있다.
세 번째 이야기, 실리콘 밸리 기업의 44%가 이민자에 의해 설립
잘 알다시피 미국의 주요한 힘은 다문화주의에서 나온다. 미국 실리콘 밸리의 고급 인력의 상당수는 이민자들이다. 통계에 따르면, 실리콘 밸리 기업의 44%가 이민자에 의해 설립됐으며, 미국 고교생 대상 과학 경진대회에서 본선 진출자의 80%가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에서 온 이민자의 아들이고,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구소련에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인도 출신이다. 이뿐 아니다. 매년 노벨상을 받은 미국인 중 상당수가 이민자 출신이다.
다문화주의가 혁신의 원동력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연구에 따르면,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의 경험이 인지적 유연성을 기르고 이질적인 것들을 연관 짓는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일이 자의식을 고취하고 스스로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는 데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에 체류하면서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외국에 살면 고향에서 접해 보지 못한 수많은 새로운 생각과 개념을 대하게 되므로 창의적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는 실제로 경험인 것이고 세 번째는 흥미로운 기사를 보고 함께 엮어봤다. 싫든 좋든 어느덧 우리는 다문화의 중심에 있다. 다문화가 우리에게 축복이 될지 혼란이 될지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
차별금지법이 소수자 문제, 동성 결혼까지 관련되기 때문에 논란이 뜨겁다. 찬반 의견은 여기선 다루지 않겠다. 단지 다문화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데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광주일보 은펜컬럼(2017. 6.7)으로 게재한 글을 보완해서 수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