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를 통해 알아보는 대통령의 리더십 스타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맥주 애호가로 유명했다.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했다. 사회적 갈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전문가를 초빙해서 백악관 뜰에서 맥주 미팅(Beer Summit)을 했고 각국을 순방했을 때도 정상들과 맥주를 마시며 만남을 가졌다. 이를 맥주 외교라고 부르기도 했다. 심지어는 백악관에 맥주 양조장까지 만들어서 ‘화이트 하우스’라는 브랜드로 맥주를 생산하고 레시피를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선호도 조사 방법 중에는 ‘맥주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어떤 후보와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싶나요?”라는 설문 조사이다. 이 조사 결과가 여론 조사보다 신뢰성 있게 나타난 경우가 2016년 대선이다. 트럼프는 힐러리에 비해 여론조사에서 상당한 격차로 뒤처졌지만 맥주 테스트에서는 앞섰었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승리했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싶은 상대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도 호감 이미지 형성에 술을 적절하게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5.16 군사 쿠데타 후 최고회의 의장 시절, 권위주의적이고 딱딱한 이미지를 어떻게 부드럽고 서민적이게 바꾸냐가 과제였다. 이때 시도한 것이 모내기철에 농부와 막걸리는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PR 하는 것이었다. 효과는 대단해서 이미지 PR의 성공사례로 자주 이용되고 있다. 그 후에도 막걸리는 박대통령의 서민 이미지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비록 10.26 궁정동 술판에 등장한 술은 시바스 리갈이었지만 말이다.
이후 역대 대통령은 술을 이미지 형성에 적절하게 활용했다. 술자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면모와 리더십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대표를 청와대로 초대해 막걸리를 곁들인 만찬을 열기도 했고 퇴근길 호프집에서 시민들과 수제맥주를 마시는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통령이 술을 마시며 격의 없는 대화를 하는 모습은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준다.
반면에 다른 경우도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파리를 방문했을 때 재벌 총수들과 비공식 술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다. 고생한 재벌 총수들을 위로하는 자리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사실 다른 대통령과 달리 윤대통령의 술자리는 평판이 좋지 않다. 외국 방문길에 동행한 재벌 총수를 불러 저녁 시간에 ‘소폭’ 좀 했기로 그게 그리 욕먹을 일일까?
며칠 전 부산 깡통시장의 떡볶이 먹방 사진에서 여러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재벌 충수를 부산으로 불러들여서 대통령의 떡볶이 먹방 행사에 병풍으로 세워놓다니, 이런 일이 과연 ‘공정과 상식’에 맞는 행위라고 생각한 것일까? 미국 대통령이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회사의 대표들을 병풍으로 세워놓고 핫도그를 먹는 장면을 연출했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오랫동안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다.
연장선에서 지난 4월 부산 횟집 앞에 도열해 있던 정관계 인사들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수직적 계층구조를 갖고 있는 조직에서 술 모임은 권력을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상사는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 부하 직원은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쓴다. 이 글의 결론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맥주 양조장을 만들어 술을 마셔도 지지를 받았는데 한국의 윤대통령은 그깟 회식 좀 했다고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 광주일보 은펜칼럼의 글에 사진을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