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타기 어려운 관계

사귀는 건 아니지만 사귀는거 같은 너와나 - 회사

by 우롱

정말 오랫만에 가보고 싶은 새로운 포지션이 생겨서 지원해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주말에 노트북 챙겨 동네 카페에 가서 레쥬메도 고치고 난생 처음 커버레터라는 것도 작성해보았다. 덕분에 간만에 지금까지 약 4년동안 해온 업무에 대한 정리와 내가 어떤 커리어로 성장해왔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서류 제출 후 한동안 매일 메일 계정을 인스타그램처럼 들락날락했지만 오히려 제 시간보다 반나절이나 늦게 서류합격 및 인적성 검사 안내 이메일을 확인하게 되었다. 서류 광탈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안내된 시험 시간까지 어찌 평일에 갈 수 있을까 고민이었다. 전날 별 생각 없이 반차도 썼기에 이틀 연속 반차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하면 길이 열린다는 말처럼 나는 닌자처럼 기지를 발휘해 인적성 테스트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학생 때는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밥과 응원을 먹고 인적성 시험을 보러 갔었다. 이제는 남 몰래 급히 준비해서 사무실 모니터가 꺼지는 시간에는 이미 회사 건물을 빠져나와 조용히 카카오택시를 타고 떠나는 007 작전을 실행해야 했다. 그 과정이 더 떨려서 막상 시험 볼 때는 모르는 문제도 쿨하게 찍을 수 있는 담력을 쌓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 했다. 객관식에 강한 나답게 운좋게 인적성도 통과하였다. 1차 면접을 앞두고 실질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정말 짧았으며 사실 인성 면접에는 자신이 있던 편이라 크게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당 포지션은 경력직을 뽑는거지만 나보다 연차가 낮고 신입 수준의 연봉 밖에 줄 수 없는 자리였던 것이다. 면접 시작부터 불편하게 시작하였다.

“커리어를 시작하신지 그래도 꽤 되신거 같은데 이 포지션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오신게 맞으신가요? 저희는 신입급을 필요로 해서요.”

“흠....experienced 라고 공지 되었는데 제가 잘못 이해한건가요?”

“그래도 경력 수준이 3년차 미만을 원해서요..”

인터뷰 자체는 정말 나이스 했고 나 역시도 지금까지 업무를 하면서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되돌아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

솔직히 1차면접에서 떨어진게 큰 충격이었다. 합격 되면 신입으로 시작하는건가?하면서 김칫국부터 마신게 매우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인터뷰에서 탈락하면서 이직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고 무엇보다 employer와 employee간의 관계가 연인 사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번째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서로의 fit을 고려해서 상대방을 택할 수 있다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원 기업에서 들은 말 중에 인상 깊었던 점은 합격 이후 지원자분도 해당 회사에 입사할지 여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근무중인 회사는 붙으면 당연히 오고 감히 니가 우리를 거절해!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회사라서 그런지 합리적인 이야기를 들을때 더 흠칫 놀라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현재 연인이 있을 때 새로운 연인으로 갈아타는게(?)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이전 연인과의 관계를 매듭짓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게 가장 이상적이겠만 실질적으로 이직 시장에서 지금 비빌 언덕 없이 백수로 재취업 준비하는건 비밀리에 진행하는 이직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항상 맺고 끊음이 명확한 걸 좋아하는 나로써는 회사에서는 현 업무에 집중하면서 이직을 생각하는게 정말 어렵다.

앞으로도 원하는 포지션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해보겠지만 이전에 취업 준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새로운 연인을 찾는 다는 심정으로 보다 전략적인 방법을 찾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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