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장과 명함 사이

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by 오유나

매일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았다기보단 버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CTO였다.
겉으로 보기엔 멋져 보이는 직함. 젊은 나이에 비해 누군가에겐 부러운 연봉.

다른 회사로 가기 위해 참여한 네트워킹에서는 어린 나이에 CTO라는 직급을 달아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한 월급 체불이 쌓였고, 저축 계좌는 텅장이 되어버렸다.


체불이 1-2달쯤 되었을 때, 다른 회사의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많은 고민 끝에 나는 이 회사에 잔류를 택했다.
내가 이 회사를 기적처럼 살려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 내 이름을 각인시킬 업적일 거라 믿었다.
원래 스타트업은 도박일 수도 있으니까, 이왕이면 판돈을 더 걸어보고 싶었다.


첫 스타트업이었기에, 지금 돌이켜보면 꽤나 많은 환상이 껴 있었던 것 같다.
불확실함 속에서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뤄내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서사.
그게 내 안에서는 하나의 꿈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진심을 다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아는 오빠는 내게 물었다.
"왜 너만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마도, 나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안정적인 길을 선택한 이들과 비교해도 나는 잘 살고 있다는 걸.
스타트업을 선택했지만 망하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실패한 게 아니라고, 이 회사를 선택한 것도, 지금 이 상황도 결국은 내 실력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 회사와 나를 동일시했다.
회사가 실패하면 곧 내가 실패한 것 같을 테니까.
그건 곧, 내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이니까.


그렇게 회사를 나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대표를 향한 믿음이 점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같은 이야기조차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팀원들과는 슬쩍 눈빛을 교환하며, 이 말이 사실인지 서로 확인해야 했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소통할까. 왜 이렇게 신뢰를 깎아먹을까.


그러던 중, 대표의 생일이 다가왔다.
누구보다 힘들어 보였고, 안색도 안 좋아 보였다.
혹시 아무도 챙기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서, 선물을 준비했다.
커피 쿠폰 같은 걸로 퉁칠까 하다가, 그래도 명품엔 눈이 돌아가는 대표의 취향을 떠올렸다.
비싸지 않은, 작은 명품 선물을 골라 책상 위에 두었다.

고맙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봤을 텐데. 모를 리 없을 텐데.

처음엔 의아했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 선물은 내 카드값으로, 그리고 내 빚으로 남았다.

나는 나름 C레벨로서 힘이 되어주고 싶었는데, 전혀 전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낸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이드 프로덕트를 만들었다. 커뮤니티에서 열심히 팔로워를 구축한 곳에서 이름을 내걸면서 홍보도 했다.

하지만 반응은 미미했고, 수익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선수금으로 받은 외주 과제를 마무리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잔금뿐이었다.
그마저도 아직 오지 않았다.


체불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계속 버틸 수 있었다.

왜일까.
무엇이 날 버티게 했을까.
우리를 버티게 했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질문은 아직도 내 안에서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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