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일로 감정을 덮었다

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by 오유나

처음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은행에서 '마통'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는 묘한 자각이 스며들었다.


회사의 임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라면, 아주 다행이라면, 나는 그 초입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상태였다.

마치 빗방울이 쏟아지기 전 우산을 펼쳐든 셈이었다.


하지만 팀의 다른 친구들은 달랐다. 대부분이 사회 초년생이었고, 신용등급도, 연차도 부족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 해도 한도가 얼마 안 나왔고,

끝내 부모님께 손을 벌리거나 아껴둔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부모님께 “회사가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는 조금 달랐다.

돈이 부족하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돈을 버는 쪽"을 택했다.

한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강의를 시작했다.
모든 강의 플랫폼에 이력서를 뿌렸다. 연락이 온 순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강의료가 얼마인지도 모른 채.

A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출퇴근길에 자료를 만들고 주말엔 스튜디오에 앉았다.

그러다 다른 회사에서도 연락이 왔다.

이번엔 일정이 더 빠듯했고, 강의료는 1시간 편집본 기준 100만 원.

게다가 질문 응답에 따른 추가 수당도 주는 곳이었다.


생성형 AI에 관한 강의였고, 그 열기 덕분에 질문도 많았다.

매달 꾸준히 50만 원이 들어왔다. 나는 그 돈으로 팀원들에게 밥을 사줬다.


몸은 피로에 쌓였고, 마음은 점점 말라갔다.
주말이면 집에 가지 않았다.
“바빠서”라고 했지만 사실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회사에서 월급이 안 나와서 강의를 시작했어.”
그 말을 부모님께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평일엔 일하고, 퇴근 후엔 강의 자료를 만들고, 주말엔 녹화하고, 밤에는 이직 준비를 했다.

누군가에게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일지 몰라도, 내게는 그저 "버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 상황이 얼마나 내 인생에 영향을 줄지,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다음 주의 생존이 우선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임금체불이 유독 크고 무겁게 다가오지 않았던 이유는..

어쩌면 강의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돌보지 않는 대신, 돈을 벌었다.
감정을 억누르고, 피로를 감내하며, 무너지는 회사를 대신해 내 삶을 땜질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대단했다.
하지만 너무 아프고 외로웠다.


이 글이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조용한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지나온 나를 품어줄 수 있는 작은 따뜻함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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