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회사를 붙든 잔다르크, 아니 헬렌 켈러의 심정으로

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by 오유나

많은 시니어 개발자들이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팀장 이상을 맡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와중에 나는 클라이언트 피드백을 직접 받으며, AI 엔지니어로서 이 프로덕트를 더 구체화할 수 있겠다는 희미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대기업에서 받은 피드백을 정리했고, 화면 기획부터 시장 조사까지 하나씩 손을 뻗기 시작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스스로 손이 갔다.


그 무렵, 대표는 외부 컨설턴트를 비싼 금액을 들여 고용했다.
돈이 없다면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우리가 못 받은 월급은, 정말 뜬금없이, 조금씩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오겠지.’
막연한 기대.
우리는 그 희망을 붙잡고 있었다. 아니,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대표와 함께 대기업 미팅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본 대표의 모습은, 그동안 함께 일하며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너졌다.
그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가 갖고 있어야 할 기본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사실 나는 그 시점에 이미 여러 회사 면접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왜 이직하시려 하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망설였다.
임금체불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내 연봉이 깎일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연차 대비 높은 연봉을 받고 있었고, 그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마주한 인사팀과 대표들의 반응은, 마치 그 믿음을 부정하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매번 나 자신을, 말로, 증명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몇 군데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내가 소개해 함께 입사한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에게는 첫 직장이었다.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기취업수당.
1년을 채워야 받을 수 있는 약 300만 원의 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임금을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금액은 꽤나 크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아 있던 팀원들이 말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우리 직책도 올랐고,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나도, 권력이나 연봉, 아니 그냥 ‘혹시나’에 눈이 멀었던 걸까?
당장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 공허한 희망 하나에 현실을 외면했던 건 아닐까?


나는 그때, 잘 다닐 수 있었던 회사를 손에서 놓고 망한 회사를 붙들었다.

"내가 아니면 이 회사를 기술적으로 이끌 사람이 없을 거야."
그런 근거 없는 책임감.
마치 잔다르크처럼, 아니, 헬렌 켈러처럼.
어쩌면, 조금은 희생자 코스프레처럼.


생계를 위해 강의도 시작했다.
잡생각이 들지 않게,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아침에는 질문에 답하고, 주말엔 강의를 찍고, 주중에는 회사일에 매달렸다.
하루하루를 채우며 그렇게 시간을 견뎠다.

정작 나는,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우리 팀은 대부분 주니어였다.
이 회사에서 뚜렷한 프로덕트 없이 이직을 한다는 건, 그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남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이유로 발목이 잡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임금을 못 받아도
울고, 화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프로덕트를 만들었다.

우리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망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이 선택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적나라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의 나를, 지금은 조금 이해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편] 여가로서의 예술, 몰입은 삶의 밀도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