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아직도 안 나왔어.”
사촌동생이 아이스 커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봄이 채 끝나기 전의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는 작은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는 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풍경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얼마나 밀렸어?”
내가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안에서는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두 달치요. 이번 달까지 하면 세 달인데… 사장이 다음 주에는 꼭 준다고 했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촌동생은 두 달 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땐 그냥 “어려운 시기지, 뭐…” 하며 넘겼다.
나도 스타트업을 해봤고, 어려운 시기를 통과해 본 사람이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그 아이의 표정은 점점 무뎌져 있었다.
한숨도, 분노도, 낙관도 없이.
그걸 보는 게 더 아팠다.
나는 알고 있었다.
‘월급이 밀리는 회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게 처음엔 어떻게 시작되고, 나중엔 얼마나 잔인하게 끝나는지를.
나는 그 회사에서 6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중 5개월은 CTO 직함을 달고 있었다.
그 무게는 가벼웠고, 책임은 무거웠다.
지옥은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됐다.
처음엔 일주일이었다.
“이번 주에 줄게요.”
사장은 웃으며 말했다.
그다음엔 열흘.
“다음 달에 투자금 들어오니까, 그때 꼭 드릴게요.”
그 말은 마치 통장을 보여주듯 당당했다.
그다음엔 세 달, 그리고 여섯 달.
나중엔 아예 ‘돈 얘기’를 꺼내는 게 민망해졌다.
계속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은 내가 먼저 월급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물어보면, “대표님이 곧 해결하신대요”라고 말했다.
사실은,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사촌동생에게 말했다.
“그만두는 거, 생각하고 있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다음 주에 꼭 준다고 했거든요. 만약 그때도 안 주면, 그만두려고요.”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3개월.
그 숫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3개월이 지나면, 임금에 대한 ‘최우선 변제권’이 사라진다.
회사가 정말 파산하거나 법적으로 절차가 들어가면, 그 뒤에 밀린 돈은 거의 받을 수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조언했다.
“혹시라도 퇴사하게 되면, 미지급된 급여 내역 적은 문서랑, 거기에 회사 도장이나 사장님 서명받아둬.
그거 있어야 나중에 대지급금 신청할 수 있어. 천만 원까지는 나라에서 대신 줘.”
사촌동생은 잠깐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게 있어요?”
그 순간, 마음 한쪽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겪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나도 처음엔 몰랐다.
그냥 ‘지금은 어렵겠지만 곧 나아지겠지’ 하고 버텼다.
그리고 그렇게 6개월을 흘려보냈다.
그 사이, 나는 몇 번이고 내 자존감을 깎았다.
‘왜 이 회사에 남아있지?’
‘내가 CTO라는 이름이 아까운 거 아닐까?’
‘내가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닐까?’
밤마다 자책했고, 출근길에는 허탈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이 회사를 위해 만든 코드들이 증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작고 조용한 분노였다.
지금도 누군가는 월급이 밀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걸 ‘버티는 중’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꿈을 좇는 거니까’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꿈이 아니라, 경고일지도 모른다.
회사보다 나를 먼저 믿어야 한다.
더 빨리 도망치는 게, 더 빨리 회복하는 길이다.
사촌동생이 이번엔 다치지 않고 빠져나오길 바란다.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신호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월급을 기다리지 않고도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