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을 겪은 사람의 조용한 기록
처음엔 잘 느껴지지 않았다. 상대방 회사의 입금이 늦어져 하루 이틀 지원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다 다음 달에는 일주일, 그다음엔 보름이 밀리기 시작했다. 회사 식사는 법인카드로 해결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법카 사용이 끊겼다. “월급에 포함해서 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이상하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우리는 국내 대기업 두 곳과 거래가 잘 진행 중이었고, 대표는 매일같이 바쁘게 투자 유치를 다니고 있었다. 당장은 힘들어도 곧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실은, 믿고 싶었다.
투자의 구체적인 진행 상황은 알지 못했다. 대표는 우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된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어느덧, 월급이 한 달씩 밀리기 시작했다.
두세 달 밀린 상황에서 새해를 맞았다. 우리는 연봉 계약서를 다시 썼다. 각자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평가하고, 연봉을 조정했다. 대부분은 동결되지 않았고, 많게는 20%까지 인상됐다. 아이러니했다. 현실은 월급조차 못 받고 있는데, 서류상 숫자는 오르고 있었다.
그즈음,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동료 두 명이 회사의 기술을 외부로 유출하려 했고, 그 사실이 발각되었다. 근로감독관과의 조사, 증언, 유출 정황의 추적까지… 하루하루가 영화 같았다. 누가 시나리오를 써도 이렇게는 쓰지 못할 이야기가 매일 벌어졌다.
처음엔 무제한 재택근무였다. 하지만 팀장으로서 팀의 원활한 협업을 위해 주 3회 출근을 요청했다. 그러다 임금 체불이 시작되면서 식대 지원이 끊겼고, 출근도 주 1회로 조정하게 되었다. 집이 멀었던 나로서는 이 변화가 한편으로는 너무도 반가웠지만, 변화 그 자체가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주 1회 출근할 때는 팀장으로서 6~9명의 팀원들과 함께 식사했고, 그 비용을 내가 부담했다. 받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CTO로서의 책임이라 여겼다.
우리 팀에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버텨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회사의 상황을 공유했고, 각자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중, 경력 15년 이상의 시니어 분들이 새롭게 합류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을 지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묵묵히 일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이제 좀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희망이라는 이름의 착각이었다.
임금체불이 세 달을 넘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나는 계속 버텼다. 회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인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인지, 나 자신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가스라이팅에 취약했던 나와,
책임감에 스스로를 고통으로 몰아가버린 나 자신은 이런 상황에 가장 최약체였다.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늪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