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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디 Jan 15. 2022

첫눈에 반했는데 나이 차이가 열넷입니다.

모딜리아니와 잔


첫눈에 반했다! 이 말만큼 어렵고 로맨틱한 말이 있을까요? 주변에서 '첫눈에 반해서 연애한다!'는 커플은 찾기 힘들어요. 저는 사람을 만날 때 외적인 것보다 그 사람이 주는 느낌을 더 중요시해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쓰는 단어에서, 행동에서 주는 느낌이 있지 않나요? 연애의 시작을 찾고 찾다 보면 문을 잡아 줬다거나, 밥 먹을 때 해준 사소한 행동 같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대학생 때 한 남자분께 카톡으로 호감을 느낀 적이 있어요. 조별과제를 같이했던 분인데, 첫 조별과제 단톡을 만든 날이 생일이셔서 생일 축하 인사를 드렸거든요. 근데 '오늘 처음 만난 민지 님께 이렇게 축하인사를 받다니 참 근사한 하루네요! 감사합니다.' 하시는 거에요. '근사하다'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받아서 그런지, 그분이 참 근사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키도 크셨고 얼굴도 나쁘지 않아서 호감) 그렇지만 그냥 호감!으로 끝!이었던 만큼 첫눈에 반하는 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요. 외적으로 끌려야 하는 것은 물론 첫눈에 받는 느낌까지 좋아야 하니까요.


20대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여기 서로 첫눈에 반한 커플이 있습니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인데요, 젊은 시절의 모딜리아니 사진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해요. 게다가 열 살에 단테의 신곡을 가장 좋아했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고 감탄하는 남자라면 주는 느낌까지 완벽하지 않았을까요?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 -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1917)

서른셋의 모딜리아니는 열아홉의 화가 잔 에뷔테른을 만납니다. 아틀리에에서 처음 만난 둘의 나이 차이는 열네 살이었어요. 둘은 첫눈에 반해 빠져들고 사랑은 둘의 미술세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잔은 풍경화를 주로 그렸었는데 모딜리아니를 만난 이후로는 인물화를 주로 그리죠.


뜨겁게 사랑했던 두 사람은 부모님의 반대에도 따로 살림을 차립니다. 잔의 부모님은 사람 자체나 외모는 출중하지만, 병으로 피폐하고 열네 살이나 많은 모딜리아니가 탐탁지 않았겠죠. 하지만 둘의 사랑은 이런 반대에 더 불타올랐을 것 같아요.

잔 에비 퇴른의 초상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7)

그대의 눈동자의 건배! 를 들을 때마다 저는 모딜리아니와 잔을 생각해요. 모딜리아니의 독특한 화풍 때문인데요, 그는 사랑하는 잔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어요. 잔이 자신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이유를 묻자 모딜리아니는 이렇게 말해요.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게요.

첫눈에 반해 사랑하지만 아직 영혼까지 알지 못하니, 언젠가 영혼까지 사랑하게 되면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다! 로맨틱하지 않나요? 왜 평소에 사람 눈은 봐도 눈동자까지 유심히 보진 않잖아요.

잔 에뷔테른의 초상 - 아마데오 모딜리아니 (1919)

  2년 후인 1919년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눈동자는 선명합니다. 이 작품을 본 잔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펑펑 울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 시기 둘의 상황은 불행했습니다. 1918년 모딜리아니가 준비한 전시회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조롱거리가 되었거든요.


갤러리 주인은 체포되고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은 압수됩니다. 전쟁상황이 심각해지자 모딜리아니와 잔은 파리에서 니스로 떠납니다. 니스에서 모딜리아니는 푼돈을 받고 초상을 그리고, 식당에서 밥값 대신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이렇게 가난했어도 모딜리아니와 잔은 행복했습니다. 니스의 밝은 햇살에 그림은 더 밝아지고 딸도 태어나요! 지독한 가난으로 둘이 키우지 못해 잔의 부모님이 아이를 데려갔지만요.

자화상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1919)

행복했던 그들에게   불행이 찾아옵니다. 모딜리아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자화상이에요. 손에는 팔레트를 들고 있지만 집에서도 껴입은 외투와 목도리가 당시의 가난을  보여주죠. 창백해진 얼굴과 눈동자 없는 검은 눈으로 그가 많이 아프다는  짐작할  있어요. 저는 모딜리아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 그의 유언이었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죽게   란걸  모딜리아니가 자신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삶을 살아갈 잔에게 자신을 잊지 말라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남긴 유언이요.


그는 1920 1 세상을 떠납니다.


자살 - 잔 에뷔테른 (1920)

잔은 모딜리아니의 장례식이 준비되던 때 뒤늦게 그의 사망 소식을 듣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사망 소식에 그의 시체를 보겠다는 잔을 보며, 잔의 가족들은 그녀가 충격을 받을까 6층 아파트에 그녀를 가둬요. 혼자 아파트에 있던 잔은 아파트 난간에서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뱃속에는 8개월 된 아이도 있었다고 해요. 모딜리아니 없이 살아갈 그녀의 삶은 의미가 없는 곳이었고, 그녀가 남긴 <자살>이라는 그림만이 그 아파트에 남아있었어요.




숫자와 사랑의 가치


저는 숫자가 주는 가벼움을 조심하려고 해요. 숫자로 무언가를 설명하긴 참 쉽지만 무거운 가치를 숫자가 대신하면 그 가치마저 가벼워질 때가 있거든요. 저는 1억을 기부했다는 연예인보다 편의점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저녁을 사주고 조용히 울었다는 아르바이트생의 블로그 일기에 더 큰 감동을 받아요. 몇 억의 돈이 행복을 대신해 주지 못하고, 높은 토익점수가 꼭 영어 실력을 대신해주지 않는 것처럼요.


사랑이라는 말이 한없이 가벼운 시기에 살고 있어요. 저는 명예, 존경보다 사랑의 가치가 더 무겁다고 믿어요. 숫자가 영향을 주는 사랑이라면 한없이 가벼운 시기에 가벼운 사랑이겠죠. 하지만 잔과 모딜리아니의 무거운 사랑에 가벼운 가치의 숫자를 논할 사람이 있을까요? 어느 평론가든 둘의 나이 차이를 두고 농담하지 않는 것처럼요.


연봉, 나이, 키, 몸무게, 자산. 어떤 사람을 잘 모르겠을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숫자를 빼면 더 명확해진 그 사람이 보여요. 사람이 주는 느낌 같은 거요. 그 사람이 쓰는 단어, 배려하는 행동, 일기를 쓰는 습관, 취향이 맞는 노래처럼 사랑에는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 더 중요해요.


무거운 가치를 가진 사랑을 가벼운 숫자로 상처 주고 있진 않나요? 주변에 나이 차이로 고민하는 친구나, 하고 있는 사랑의 가치가 가볍게 느껴질 때 잔과 모딜리아니를 함께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큰 모자를 쓴 잔 에뷔테른>과 <잔 에뷔테른의 초상> 그리고 잔 에뷔테른의 <자살>을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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