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으로 된장찌개를 끓이려다 손을 베였다. 요리하다 손을 베인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양파 껍질을 벗겨내고 반을 잘라 흰 반구을 만들어 또 한 번 그 반을 잘라내려던 순간, 칼이 양파 표면을 미끄러졌다. 칼이 내 왼손 엄지와 검지에 닿았다. 베였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칼이 내 손가락에 닿았다는 감촉만 느껴졌다. ‘어 안 다친 건가?’ 안도하려는 찰나, 피가 흘러나온다. 왼손 두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인 채 타자를 치는 이 순간. 그래도 오른손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내가 했던가?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를 따라다니는 게 취미였던 적이 있었다. 오빠가 하는 것들은 다 좋아 보이는 것, 부러운 것, 멋진 것, 나도 하고 싶은 것. 오빠도 나도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유치원 종일반에서 오후 낮잠을 자고 우릴 데리러 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던 시간이 익숙해질 무렵. 부모님은 오빠를 보습학원에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오빠는 학원에서 구구단과 영어 알파벳을 배웠고 나도 오빠를 따라 학원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다. 학원 원생이 되기엔 아직 어린 나는 학원 원장님의 배려로 오빠가 수업을 듣는 동안 뒷자리에 따로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름 쓸 줄 알아?”
하얀 피부의 여자 선생님이 맨 뒷자리에 앉아 그림책을 보던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 나는 글자를 쓸 줄 몰랐고, 엄마가 집에 붙여 둔 ㄱㄴㄷ벽보가 내가 아는 모든 글자였다. ㄱ은 가방, ㄴ은 나비, ㄷ은 다람쥐 그런 것들. A는 APPLE, B는 BANANA, C는 CAT. 2층짜리 상가의 2층에 위치한 보습학원. 햇빛에 낡아 너덜너덜해진 시트지와 갈라진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 비집고 들어온 빛은 더 밝다. 상가 1층 왼쪽엔 오래된 방앗간이, 오른쪽엔 정육점이 있었다. 오후가 되면 올라오는 고소한 냄새. 방앗간의 냄새. 내게 다가온 선생님에겐 화장품 냄새가 났다. 어린애들이 쓰는 분 냄새 같은 것. 비집고 들어온 향기는 더 진했다. 그곳에선 내가 가장 어렸고, 글씨를 쓸 줄 몰랐고, 내가 하는 모든 건 다 어설펐다. 열심히 오빠와 언니들을 보고 따라 해보지만 역부족인 그런 것들. 혼자 가방을 싸고, 신발을 신고, 연필을 잡는 그런 것들.
학원 안의 모든 아이들의 고개가 뒤돌아 나를 응시했다.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와 동그란 흰자위. 방금 내 식칼이 미끄러진 동그란 양파처럼 생긴 눈알. 맨 뒷자리에 앉은 나를 보기 위해 몸을 돌린 남자아이들. 곁눈질로 나를 보는 여자아이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죄를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좁아진 목구멍에 힘을 주어 말했다.
“아니요.”
“그럼 오빠 따라온 김에 이름 쓰는 거 배워가자. 이름이 뭐야?”
8칸짜리 공책에 선생님이 내 이름 세 글자를 쓰니 다섯 칸이 남았다.
이제 남은 칸을 선생님이 쓴 것처럼 따라서 쓰면 되는 거야. 그림 그리는 거랑 똑같아. 선생님이 쓴 거랑 최대한 비슷하게 그리면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선생님의 말이 아득하게 들렸고 나는 선생님이 쓴 내 이름을 비슷하게 따라 쓰기 시작했다.
“너 왼손잡이구나?”
아직 글쓰기를 배우지 않았던 시절. 나는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내 이름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돼. 오른손으로 잡고 써야지.”
삐뚤빼뚤한 글씨는 왼손과 오른손을 구분 짓지 않았다. 왼손으로 쓴 글씨도 오른손으로 쓴 글씨도 모두 손아귀 힘이 부족한 어린이가 쓴 글씨로 보였다. 내 이름엔 이응이 많다. 완벽한 동그라미를 그리는 건 어른이 된 지금도 어렵다. 내 이름엔 구멍이 많다.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이름. 바람이 통하는 것 같은 글자. 낡은 창문 새시 사이로 들어오는 참기름 짜내는 냄새. 뜨겁고 축축한 그리고 고소한 냄새. 연필을 쥐고 있는 오른손바닥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어린아이의 축축한 손. 뜨겁고 축축한 그리고 고소한 냄새. 연필을 빼앗긴 왼손바닥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났다. 베인 손이 왼손이었지. 오른손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하지만 넌 왼손잡이잖아.
선생님은 오른손으로 연필을 옮겨 쥐어준 뒤 내가 왼손을 쓰지 않는지 한 번씩 확인했다. 그래 오른손이 옳은 손이야. 왼손을 쓰면 안 돼. 나중에 선생님한테 고마워할 날이 올 거야.
“너 왼손잡이야?”
초등학교에서 처음 리코더를 불던 날. 당연하다는 듯 얹은 내 손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위치에 있었다. 오른손이 위로 왼손이 아래로. 아니지 오른손이 아래로 왼손이 아래로? 몇 번의 헷갈림 후에 나는 내 손에 편한 위치로 리코더를 불었다. 위아래가 뒤바뀐 손으로 에델바이스를 수행평가 과제로 불었다. 수행평가 만점을 받았다.
아빠 가게 마감시간이 지났다. 쪼르르 아빠에게 다가와 도울 일이 없는지 묻는다.
“시재점검이나 해줘. 요즘 현금도 거의 안 들어오긴 하지만.”
돈을 꺼내 한 두 장 세었을 무렵, 아빠는 묻는다.
“너도 왼손잡이니?”
“아빠도?”
“할머니랑 큰아빠한테 엄청 혼나면서 고쳤지. 왼빼, 왼빼 그러면서.”
별 걸 다 닮네. 아빠의 혼잣말에 나도 속으로 되뇐다. 왼빼, 왼빼 그러면서. 다친 손이 오른손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지. 왼손의 상처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욱신거린다. 왼손잡이였잖아. 그렇지? 한번씩 되묻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