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미안해 널 미워해 - 현명하게 싸우는 법 (2)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내 감정과 기분을 제대로 전달했다면
사실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론적으론 그 사람과 내가 서로의 감정을 오롯이 이해했다면
더 이상 감정이 상할 이유가 없어 싸움이 끝나야 한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늘 다르므로 아직 우리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의 휴지기이다.
불과 십분 전까지만 해도 불꽃같은 감정의 충돌을 가졌던 두 사람이
미움의 감정이 사그라들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했다고 해도
일말의 자존심과 부끄러움 어색함 등이 사랑과 애틋함의 등장을 여전히 방해한다.
이때 우리는 서로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어색하고 답답한 공기가 싫어 서둘러 무언가를 해결하려고 할 때
새로운 싸움이 발발하거나 또 다른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잦은데
이는 이제 막 딱지가 앉기 시작한 상처를 건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해의 속도가 빠른 머리와는 달리 마음에겐 머리를 따라가는 일 자체가 버거운 일이므로
자기 자신의 마음에게도, 상대방의 마음에게도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주어야 한다.
이 시간 동안 생각과 생각을 거듭하며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궁금증이나
나의 감정을 아까보다 깔끔하고 정리된 문장으로 말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그 어떤 경험보다도 얻는 것이 많은 제대로 된 의미의 싸움을 완료하게 되는 것이다.
혹여 성격상의 이유나 다른 이유 등으로
그 순간에 조리 있게 말을 못하거나 감정이 쉬이 식지 않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에게 시간을 요구하면 된다. 순간의 감정으로 아차 하는 실수를 하는 것보다는
지금 말고 다음에 이야기 하자는 편이 관계에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단, 다음이 언제인지 명확히 정하여 말해야 한다.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다음은 기다리는 상대방에겐 너무나 잔인한 인고의 시간이므로
'나에게 2시간만 시간을 줘.'라고 정확히 이야기하거나
'내가 오늘 저녁까지 생각해볼게 시간을 좀 줘.'이라는 기준을 제시해 두어야 한다.
이처럼 말한 뒤 약속한 시간엔 반드시 연락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상대방에게
'고마워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줘서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
라는 말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했건 나와 치열한 싸움을 했더라도
나를 기다려 준 것은 분명히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 맞고 싸움과는 별개의 일이다.
상대방의 호의를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해선 안된다.
감정이라는 것은 입 밖으로 내면 낼수록 그 색이 옅어지는 성격을 갖는다.
말하지 않고 끌어안고 있을수록 감정은 탁하고 어두워져
결국에는 나를 잠식하게 된다.
물론 연인과의 관계에서 모든 일들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효율적으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매정해 보이기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감정과 이성의 적정선상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감정이나 이성이 아니라
그 둘이 조화롭게 섞여야 건강하고 행복한 연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