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뜻하지 않은 일로 어릴 적 자란 곳에 간다. 거기엔 이층짜리 꽤 큰 규모의 극장이 있었다. 똘이와 제타로보트, 우뢰매, 레드소냐 등의 영화를 봤더랬다. 사람들이 두루 거쳐간 덕에 바닥이 반들거렸던 영화관 나무 의자들을 기억한다. 수원극장과 춘천의 육림극장이 그랬다. 반면, 서울 은평에 있던 도원극장은 4D의자를 도입하는 등 당시로서는 최신식으로 극장을 리뉴얼했다. 아직 불광에 CGV가 들어서기 전의 일. 4D 좌석에 대한 호기심에 영화 007을 보러 갔던 걸 기억한다. 내 첫 4D체험이었건만 이런, 극장 안에 사람이 네다섯은 됐을까. 그래도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상영할 적에는 부모 손을 잡은 어린아이들로 영화관이 꽤 붐비기도. 하지만 4D의자를 들인지 이태가 좀 못돼 극장은 폐관하고 대신 커다란 슈퍼마켓으로 바뀌었다.
BBC에서 방영했던 '인테리어 디자인 챌린지'. 건축사학자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도전자들이 인테리어 할 건축물의 특징과 해당 지역의 역사 등을 경연에 앞서 간략히 소개해준다. 시대별, 지역별로 건축 양식과 특성이 또렷한데 그게 여태도 잘 보존돼있어 놀랐다. 이를테면, 열 다섯명까지 목동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던 영국 전통가옥의 나무 문짝에 그들이 즐겨 했다던 다트 자국이 남아있을 정도.
옛날 도원극장에선 영화 상영뿐 아니라 송골매나 시나위 같은 락 그룹의 공연이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기록은 없다. 그저 몇몇의 기억 속에만 있을 뿐인데, 그 기억마저 다하면 어떤 역사들은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다. 아쉽다. 식민지였고, 전쟁이 있었고, 근대화 광풍이 잇따랐다지만. 출렁다리가 히트를 치면 여기저기 출렁다리 천지가 되고 마는 것도 이것과 영 연관이 없지는 않을 거란 생각. 쉽게 허물고 새로 짓는 것에만 익숙해 온 방증인 것만 같아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고유하게 생성된 컨텐츠라는 게 빈약한 탓에 전국에 이백여 개가 넘는 출렁다리가 생기게 된 것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마저도 벌써 옛것이 됐다. 요즘의 유행템은 스카이워크라고. 빠르다 빨라. 오늘은 또 무엇을 허물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