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더웠던가. 그래서 창을 닫고 에어컨을 켜두고 있었다. 차량이 정체되는 구간이었기에 일렬로 길게 늘어선 차들의 매연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고. 조끼를 입고 먹거리가 든 바구니를 든 사내가 차 옆을 바로 지나쳐간다. 호두과자인가? 요즘 누가 저런 걸 국도에서 사먹는담. 역시 아무도 차창을 열어 달라는 사람이 없다. 사이드 미러의 시야를 벗어났던 남자가 되돌아 오기까지 손에 들린 건 그대로인 채. 호두과자 아니고 약단밤이었네. 내가 달랠까. 아니, 늦었다. 정체가 풀리기 시작한다.
안국역 6번 출구 앞이었을 거다. 십년 더 저 쪽의 광경이었지 싶은데 두꺼운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바늘 귀 꿰어드립니다'라는 손글씨가 쓰여진 작은 입간판을 세워 두고 앉아 있었다. 바늘 귀를 꿰려고 서울 안국역 6번 출구 앞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가. 공임은 받으시나. 왜 안국역 앞인가. 제 호주머니에 바늘 귀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잠깐. 뭐, 아주 잠깐이었어. 그 날의 나는 지하 역사로 무심한 듯 발걸음을 옮겼을 테지. 자주 찾던 지하철 역은 아니어서였는지 그 이후로 할아버지를 다시 본 기억은 없다.
가망없는 일들.
영월 무릉리 요선암 돌개구멍은 장관이었다. 넓다란 바위 곳곳이 오목하게 솟아있거나 밥주발 마냥 패여 있다. 오랜 세월 유수와 자갈 등에 의해 생긴 돌개구멍이란다. 중생대에 형성된 화강암반이라는데, 맙소사 중생대라니. 2억 5천 백만년 전부터 6600만년 전까지의 시기를 이른다는데 그저 오래 전이라고 하고 말기엔 너무나 먼, 다른 세상. 평일인데도 사진가 몇이 부지런히 기암괴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데 사진사가 있어서 기념사진 찍어준다면서 사진팔고 그랬을 텐데." 동행은 잘 모르는 눈치.
주전부리를 위해 국도에서 호두과자나 단밤을 사느니 사람들은 휴게소나 편의점을 찾을 것이다. 바늘귀를 꿰려 안국역 6번 출구 앞을 찾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름난 관광지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려 노란색 완장을 찬 사진사를 찾아보기는 더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에 있는데 어떤 이들은 왜 가망없는 일들을 하고 가뭇없이 사라지나.
전단지를 받아들며
헬스클럽 이벤트나 아파트 분양 전단지를 건네는 일또한 제게 가망없는 일에 속한다. 물티슈나 사탕, 부직포 행주를 끼워서 준들 별무 소용. "안사요 안사" 굳이 말로 꺼내지 않아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리거나 먼 데 시선을 두고 성큼성큼 걸으면 그만인데, 언제부터였는지 주는 대로 받게 되었다.
세상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동시대라고 한들 너와 나의 세상또한 같지가 않다. 하므로 가망없는 일에 매달리는 이가 과거의 그들만은 아닐 터다. 그리고 저도 모르지. 제가 붙잡고 있는 일들의 가망에 대하여. 그저 지금 가능한 일들을 하며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맞이할 뿐. 때로 가망이 없다고 해서 그게 삶이 아니랄 수 있나. 각자의 세상 속에서 순간은 달라도 돌개구멍처럼 어쩜 우리 같은 표정을 이어 짓고 있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