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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역꾸역 "

by 이불킥개혁가

꾸역꾸역 하다 보면 계속하다 보면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아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제현주, <일하는 마음>-




처음엔 그랬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잘하지도 못하고, 진짜 내가 이걸 계속해야 하나 싶을 만큼 스스로가 못나 보일 때도 있었다. 남들보다 느리고, 늘 헤매고, 때론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냥 꾸역꾸역 했다.

의욕이 없을 때도, 몸이 안 따라줄 때도, 이해가 안 될 때도 — 그저 ‘계속’했다. 그게 전부였다.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에 띄는 변화도 없었고, 누군가 알아봐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돌아보니 내가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숫자로 드러나지 않아도, ‘잘함’이라는 기준으로 환산되지 않아도, 그동안 내가 버텨온 시간이 분명히 무언가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나도 모르게 쌓여서,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던 거다.

그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은 ‘계속함’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줬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꾸역꾸역 하고 있다.

그리고 안다. 지금 흘리는 이 시간도 언젠가는 나를 또 한 번 끌어올려줄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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