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흐린 날

흐리다

by 보리차

이유 없이 피곤하고, 날씨도 우중충한 날이 있지 않은가? 사람이 언제나 행복하지는 않다. 어떤 날은 우울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쨍한 햇빛을 맞으며 웃기도 하는 것이다.


학생으로 살아가면서,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가면서, 여전히 답답하고 힘든 일들도 많지만, 그래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디딜 뿐이다. 햇빛을 잔뜩 머금은 푸르른 하늘을 보며 웃기도 하고, 흐린 날씨에 우울해하기도 하면서.


감정을 숨기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이유 없이 흐린 날에는 기분 나빠하기도 해야겠지.


그래도 내일은 햇빛이 들기를 바라면서 살아간다. 내일을 그리며 살아가기에, 희망을 가지기에, 우리는 인간인 것이고, 지성체로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똑똑하지도 유능하지도 않다. 흔히 말하는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가론 마음만 앞서는 멍청이라는 뜻이다. 쓴소리가 두렵고, 나아가는 것은 더더욱 두렵다. 한 번 무너진 뒤로는 그 무너짐이 두려워서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품 중에 <완벽한 가족>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퇴고도 스토리라인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주인공은 망가져가고, ‘살인‘이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수단으로 ’ 완벽한 가족’의 몰락을 보여준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나를 속이고, 위선으로 모두를 속이는, 위선자. 부러진 날개로 날고자 하는 우매한 자. 그게 바로 나다.’


<완벽한 가족>의 첫 문장이다. 이 시절 나는 이상 작가님의 <날개>라는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거기에다 ‘나‘를 접목한 것뿐이다. 웃음이라는 거짓말로 인간관계를 연명하는 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작중 주인공은 ‘이화’라는 친구를 만나 점점 솔직해진다. 하지만, 그걸 원치 않던 주인공의 아버지가 어김없이 폭력을 사용하려고 했다. 그 대상이 어머니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걸 참을 수 없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점점 내적갈등이 심화되며 자살시도를 하려고 하고, 주인공의 내적갈등 또한 심화된다.


아마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모성애와, 외가에 대한 복수 중에서 갈등하고 있었던 듯하다. 어머니의 가족은 어머니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특히 어머니의 오라비가 더욱더 그러했다. 남아선호사상의 잔재였다. 그러해서 핏줄이자 아들인 주인공을 좋아하니, 주인공을 미끼로 삼아 외가 사람들을 죽이려고 계획한 듯했다.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마지막으로 솔직해질 기회였지만,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그러하다 말했다. 좋은 엄마로 남고 싶은 위선이었으며, 거짓말쟁이였다.


그 외가 사람들 중에는 이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지 알지 못했을 뿐이다. 주인공은 제 삼촌의 가족과는 자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그들을 시체로 맞이하게 된다.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주인공의 어머니조차 솔직하지 못했다. 억압 속에서 분노를 숨겼을 뿐이었다.


그 위선으로, 그 거짓말로 인해 주인공은 어머니를 죽인다. ‘이화의 죽음’에 대한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사랑’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거짓이 되는 그 순간, 주인공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주인공 또한 솔직하지 못했다. 힘들다고, 괴롭다고 그 한 마디를 뱉지 못해서, 이화가 그를 도왔다. 솔직한 이화를 본받아서, 어머니를 죽인 것이다. 거짓된 사랑에 대한 배신감. 거짓은 악의만 낳는다는 작품 속의 교훈이기도 했다.


거짓말하기에,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기에, 마지막에 주인공이 스스로 솔직해지며, 자신을 증오하는 마음을 인정하며 죽은 게 아닐까?


많이 아쉬운 작품이었으나,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좋은 것 같다. 이런 불완벽이 완벽에 대한 반발이라고 생각한다. 치기 어린 글이지만, 그 치기가 글이 되어 내게 와닿아 가슴속에 스민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글은 어렵다. 소설은 더더욱 어렵다. 가상의 존재가 내 심상 속에서 뛰논다는 것이, 그 가상의 존재의 감정과 서사를 적당히 조화해서 풀어내야 한다는 점이, 너무나도 어려운 것 같다.


주인공에게도 햇빛이 닿길 바란다. 흐린 하늘만 치켜볼 것이 아니라, 맑은 하늘 아래에서 진심으로 웃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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