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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우울증

나에게는 애정결핍 친구가 있었다.

by 보리차 Feb 28. 2025

 패션우울증. 들어본 적 있는가? 주변에서 쉬이 접할 법한 말은 아니지만, 정신의학 관련 영상. 특히 우울증 관련 영상을 뒤지다 보면 나오는 용어이다. 그 용어에 딱 어울리는 친구를 둔 적이 있다.


 바야흐로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친구가 없던 내게 다가와 준 유일무이한 친구였다. 조금 강압적이고 제멋대로인 친구였지만, 취미가 맞았기에 함께했다. 함께 방학 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독서를 하고 사서 선생님과 친해지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5학년 겨울방학 끄트머리. 2/22. 나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운 동네로 말이다. 경기도에 살다가 서울로 간다는 말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했지만, 친구를 잃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하던 그런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새로운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도 좋은 친구들은 많았다. 차츰차츰 잊어갈 때 즈음, 그 친구는 중학교 6학년 중반 즈음 나에게 연락을 주었다. 그 친구를 A라고 지칭하겠다. A는 별문제 없이 잘 지내는 듯싶었다. 하지만 연락은 잦지 않았고, 점차 연락하는 시간이 줄어만 갔다.


 때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본인이 환각을 본다고. 아프다고, 우울하다고. 그런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면서, 무덤덤한 듯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게다가 팔목에 밴드가 잔뜩 붙여진 사진을 보내기까지 했다. 처음에는 너무 안타까웠다.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껴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차 이상해졌다.


 계속 우울에 대해 토로하는 그 모습을 보니, 그것이 6학년 시절 다른 친구들과의 친목에 미쳐,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한 나의 탓인가 싶었다.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나도 아파야 할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칼에 손을 댔다. 두려웠다. 피가 송골송골 맺히는 모습.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밴드를 잔뜩 붙였다.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머리에서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속의 우울 스택은 이래도 되지 않느냐고 이상한 생각을 해댔다.


 매일 같이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을 하는 통에, 게다가 밤에도 연락을 하는 통에 다른 일을 하기는커녕 전화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A는 점점 이상해졌다. 자신이 해커 집단의 수뇌부라고 말하지를 않나. 버츄얼 유튜버라고 말하지를 않나. 전자의 경우에 대해서 말하자면, 자신이 아는 오빠한테 스카우트당했다. -> 그 사람에게 배웠다. ->?? 갑자기 말이 바뀌어서 원래 알고 있었고 스카우트당했다. 이런 식으로 말이 자주 바뀌고는 했다. 버츄얼 유튜브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10만은 넘었다곤 했다.


 이 거짓말을 학교에서도 하는지 A가 말하기를, 자신이 10만 유튜버인 걸 친구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실버버튼을 달라고 하는데, 그 실버버튼은 다른 사람 손에 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들로 나를 휘어잡는 모습이 같잖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점점 악화되는 감정에 다투고, 그다음에는 내가 직접 연락을 했다. 너무 힘든 사람인데. A는 나약하다고 은연중에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친구를 잃은 그녀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락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전화번호도 그대로였고, 살아있었다. 그게 너무 다행이었다. 죽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악연도 인연이라고, 은연중에 A를 걱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연락한 A는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여전히 강압적으로 굴었지만 괜찮았다. 나중에 롯데월드도 같이 같다. 물론 내가 체해서 많이 힘들기는 했다. 그런 나를 데리고 놀이기구를 타러 간 것도 A의 인성을 반증하는 일이지만 말이다.


 자신이 우울하다고 착각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점차 망가져가는 모습에, 엄마는 인연을 끊으라고 울부짖었다. 사실 추후에 보니, 초반에 자해라며 밴드를 붙이고 찍었던 건 전부 거짓말이고, 자해를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웃기는 일이다. 그 모습에 내가 아팠던 것은 그럼 허상인 것인가?


 허무했다. 공황장애가 찾아오고, 여름방학을 집에서만 보내던 나는 이대로 살아서는 내가 먼저 죽겠다는 마음이었다. 사실 죽으려고도 했지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지쳤지만, 아직도 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고 싶었다. 우울로 말미암아 망가져갔지만, 그걸 경험으로 글도 쓰고 그랬다. 물론 그 글이 망하기는 했지만, 그 글을 바탕으로 내 글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은 처음에 어린 마음에 A를 믿고 싶었다. 하지만 A를 믿는 게 감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점차 세뇌하며 A를 믿긴 했지만, 그로 인해 내가 망가졌으니, 많이 후회하고 있다.


 친구를 배려하고 함께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스스로를 위해서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진상도 손님이라며 대해줄 필요가 없듯이, 인간관계에서 피해를 주는 인물은 대해줄 필요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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