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것들과 하고 싶던 것들

나에게는 화가 나는 일이었다.

by 보리차
힐링하세용 :>


보통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통해 공부를 시작하고, 학원으로 넘어가서 점점 내용이 심화됨을 느꼈을 것이다. 그 12년 동안의 공부의 끄트머리는 고작 대학이고, 그 대학의 끄트머리는 결국 취직이라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어렸지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원하는 주체로 살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림이 좋아서 화가를 꿈꿨다. 화가라는 직업의 정체성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이야기였지만, 그때 당시에는 꽤나 진지했다. 어머니는 ‘그래… 뭐 어리니까.‘ 이러며 넘기셨다. 어머니의 말씀이 옳다. 나는 입시 미술을 하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다음 주자는 웹툰작가였다. 내 머릿속의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반대에 휩쓸려 이내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나의 정체성을 기억한 후, ’작가’를 외쳤다. 정확하게는 ‘소설가‘. 나는 책 중에서도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


소설가의 꿈은 쉽지 않았다. 일단 공부부터 하고 해도 늦지 않다는 그 말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진지한데, 왜 나를 지지해 주고 인도해주어야 할 부모님이 내 길을 가로막는지 그 시절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로 돈 벌어먹고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작가라는 꿈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 무엇을 줘도 내줄 수 없는 무언가라고 해야 할까? 책은 즐거웠다.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제목부터 두근거리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저자 란에 내 이름 석 자가 반듯하게 인쇄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결과론적으로는 나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에 가까우려나? 하지만 이 실패는 커다란 실패는 아니다. 아주 사소한 실패. 중학교 2학년 시절 제멋대로 썼던 책을 출판사에 투고한 것이 탈락한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울지 않았다. 누구보다 어린아이 같았지만, 이런 글을 가지고 세상을 마주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 <아몬드>를 출간한 창비를 비롯한 수많은 출판사들이 나를 거부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하지 말라며 공부나 하라고 하는 것보다는 괜찮은 말들이었다. 그저 별로라는 말을 예쁘게 오려 붙인 것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그 작은 말들을 곱씹는 나는 희열을 느꼈다. 험난한 대신 그 산 꼭대기에 올라서 보는 전경과 같이 아름다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싶은 그런 기대감도 있었지만, 나를 온전히 ’작가지망생’으로 볼뿐, 내가 아이고, 어른이고 간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계속해서 도전했다. 웹소설 판에도 도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인 ‘무협’을 들고 말이다. 무협은 굉장하다.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정열적인 주인공의 투쟁.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나를 이끌었다. 처음은 웹툰으로 접했지만, 후에는 만화책을 찾아볼 만큼 좋아했다. 웹소설 중에서는 <환생 천마>라는 작품에서 ‘이 강호는 내가 좋아한 줄이나 모르겠구나.‘라는 대목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나의 첫 번째 작품 ‘강호호걸‘을.


네이버 웹소설에서 도전해서 챌린지리그 -> 베스트리그 승격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버 측에서는 시리즈에디션은 로맨스와 로맨스 판타지 측에만 제안하는 게 전부인지라, 시리즈 에디션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첫 작품을 완결내기란 어려웠고, 결국 작품은 흐지부지 종점을 찍게 되었다.


두 번째 작품 금강불괴도 베스트리그 승격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역시 시리즈에디션의 벽은 높았다. 그래도 30회차 만에 총 조회수 2만 회를 찍어내고 시험 때문에 흐름이 끊겨 결국 흐지부지 연재중지로 끝나고야 말았다.


나머지 두 작품은 별로 인지도도 없고, 열심히 쓴 작품도 아닌지라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글을 써내라고, 독자가 별점을 남기며, 독자가 관심을 눌러주는 그 희열이란.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엄… 홍보도 아니고, 그냥 인증 사진?


그전에도 브런치는 몇 번 도전을 했지만, 실패했었고, 지난 월요일에 넣어본 작가 신청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건지 결국 ‘통과‘ 두 글자를 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뭐 벼슬도 아니고, 돈을 써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가, 멤버십 작가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홀로 기쁨의 축배를 들었을 뿐이었다.


아직도 부모님은 공부를 하라고 하신다. 그게 옳은 일인 것은 맞다. 가장 쉬운 일이고, 그걸 따르지 않는 수많은 ’패배자’들을 보았을 테니까. 나도 내가 남다르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내가 옳고, 나는 내 길을 살아간다고 부모님 말을 전부 무시할 수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해보고 싶던 내 치기 어린 마음을 잘못되었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나도 옳았고 부모님도 옳았다. 단지 사회의 패러다임과는 맞지 않아 일어난 마찰일 뿐이다.


나는 그래도 대학교에 갈 것이다. 아직 4년이라는 세월이 남아있지만, 정말로 얼마 남지는 않았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어떤 대학에 나와서 행복하게 살지, 어두컴컴한 끝이 없는 터널에 갇힌 양 살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대된다. 미래의 나는 정말 행복할까?


사실 이 모든 과정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더더욱 즐겁지도 않았고. 힘든 일도 있었다. 키보드라고는 두려워서 손도 안 댔던 날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키보드 타자를 열심히 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글 쓰는 게 즐거운 것이 아니다. 보는 이가 있기에 즐거운 것이다. 나를 봐주는 사람들. 나의 다음 글을 기대해 주는 사람들. (아직 구독자는 별로 없지만.) 라이킷 수를 보면서, 나의 글이 누군가에 영감을 줄 수 있구나. 이런 마음을 느낄 때도 많다.


뭐 초보 작가라고 응원의 의미로 주는 라이킷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의미로 해석하여, ‘당신의 글이 좋았습니다.’라고 모든 라이킷을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댓글도 없는 마당에, 라이킷을 누른 독자의 심리를 파악하시오라고 한다면 누군들 답을 맞힐 수나 있겠는가? 그냥 내 멋대로 해석하는 게 전부이리라.


누군가는 식견이 모자라다며 불평하며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좋다며 라이킷을 눌러주고는 유유히 떠날 것이며, 또 다른 이는 조용히 보고 라이킷조차 누르지 않은 채 떠나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브런치는 명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단정 지었다. 힘든 길일 수도 있다. 수 달 동안 구독자 수가 제자리걸음일 수도 있다. 내 글은 아름답지도 감상적이지도, 정보성이 뛰어나지도 않은 투박한 바위를 닮아 있으니까.


이 투박한 바위조차 ‘이상‘을 닮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나는 그처럼 천재도 아니고, 그처럼 뛰어난 식견을 지닌 것도 아니다. 희대의 천재라 칭송받던 그처럼 유명해지지도 않았다. 나의 눈을 트이게 한 그의 작품 <날개>. 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중편소설 <12월 12일>. 다른 작품들도 작품성이 뛰어나다. <봉별기>라던지 <지도의 암실>도 유명하다. 하지만, <12월 12일>의 그 절망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뛰어난 필력도 아니다. 뛰어난 서사 구사력도 아니다. 무언가 나를 빨아들이는 그 황홀함이 나를 이끌었다. 나도 이상과 티끌이라도 닮고 싶어서, 글을 주야장천 썼다. 무엇을 써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상의 작품은 놀라웠다. 이상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모더니스트‘ 그 편협한 다섯 글자뿐이었다. 하지만, 그 다섯 글자로 이상의 작품을 파악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더 멋있는 것이다.


그를 닮고 싶었으나, 닮지 못한 둔재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적당한 중산층 가정. 무언가를 바랄 수 있도록 나를 꼭 안아주신 나의 부모님. 그 두 분이 나의 모든 것을 빚어주신 것이다. 제멋대로 살기는 했지만, 속도 썩이고 울리고 화나게도 했지만, 그래도 그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이다.


하기 싫던 것들의 강요도, 분명 내가 잘 되길 바라서 하는 소리였겠지. 그래서 더욱 고맙다. 나에게 그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고맙다.


그냥 이번 글은 수필도 무엇도 아니고, 나의 감상을 나열한 줄글에 불과하다. 미래에 대한 나의 확고한 다짐의 증표이기도 하다. 그러니, 정진하자 보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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