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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제로 Dec 04. 2020

손을 놓아야 했던 게이트-어느 공항

나보다 마음을 잘 누른 건 당신이었기에.

13월 1일  

AM 10:00 

우리가 같이 들어갔던 게이트였다. 

여행을 앞두고 부푼 마음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게이트였다. 

그랬지만 오늘은 마주 잡은 손을 떼어내고 

온전히 온전히 내 발로 혼자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6시간 전) AM 04:00 

드디어 잔다. 어제까지 작별인사를 하고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미처 싸지 못한 짐을 정신없이 밀어 넣었다. 

그동안 실감이 나지 않아서 짐 싸는 일도 최대한 미루고 미뤄왔다. 

지금도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그냥 졸리다. 


AM 05:00 

짧은 잠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이불을 개고, 거울을 보고, 옷을 입고 불을 껐다. 

어둑한 새벽이라 갑자기 어두워진 방이 더욱 비어 보였다. 

항상 나를 위해 존재했던 곳을 두고 다른 공간을 찾으러 간다는 것이 낯설었다. 


AM 08:00 

슬플 줄 알았던 작별의 시간. 

수하물 무게를 맞추느라 혼이 쏙 빠져서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그러다 수하물을 위탁하고 여유가 좀 생기자 

왈칵 나도 모르게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실감'

그때 느낀 감정은 그것이었다.





AM 09:00 

함께 밥을 먹었다. 

탑승시간이 째깍째깍 다가왔고 초단위의 시간마저 아까워  

무엇인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우는 것만 빼고. 


AM 10:00 

밥과 함께 울음도 씩씩하게 삼켜내고 정말로, 

이제는 헤어지기 위해 출국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같이 들어갔던 게이트였다. 

이제 진짜 혼자라는 두려움, 헤어지기 싫다는 마음이 휘몰아쳤고 

그 감정의 파도는 눈물로 쏟아졌다. 

당신과 나는 울지 않으려 애썼지만 나는 울어버렸고 

이런 나 보다 마음을 잘 누른 건 당신이었기에  

이젠 가야 할 시간이라고  

나를 게이트 안으로 보내는 역할은 당신의 몫이 되었다. 


뒤돌고, 뒤돌다 겨우 게이트 안으로 향했고 

당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땐  그 뒤로 돌아 나가고 싶어 질까 

고개를 떨궈 바닥만 보며 묵묵히 걸어냈다. 


AM 12:00 

긴 비행의 초반부. 너무나 피곤했고, 기내는 조용해졌지만 

무언가 자꾸 마음을 붙잡아 쉬이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아껴둔 편지를 꺼냈다. 한 장 한 장,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인 말들이 

너무 예쁘고 애틋해서  하염없이 편지 위로 뚝뚝 무언가 흘렀다. 



15월 2일 

적응되지 않는 시차와 쉴 틈 없이 벌어진 일들 덕에 

체력도 정신도 없이 지냈다. 

더 이상 멍하니 있다 우는 일은 없었지만 때때로 허하고, 씁쓸했다.  


그럴 때면 그때의 편지를 다시 꺼내고, 읽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게이트 밖으로 나가 당신을 만나기를. 아

니면 언젠가 다시 그 게이트 안으로 함께 들어가기를  바라는 날들로 가득했다. 

그 마음들로 그곳에서의 외로움을 버텼다.




18월 15일 

비록 이제는 그때의 편지도, 마음도. 

그 어떤 것도 우리 사이를 붙잡지 못하지만. 

이따금 당신을 떠올리면  우리가 함께 들어갈 수 없었던 게이트가 그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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