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나다. 천만에요.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세비야에 가는 날.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버스 출발 직전에 도착했다.
버스에 들어와 보니 좌석이 한 개 남아있었다.
우리는 두 명인데.
일단 있는 자리에 친구를 앉히고 기사 님께 좌석이 없다고 했더니
일단 기다리라 하고 하신다.
자리와 승객 리스트를 쭉 살펴보더니 버스 기사 님 얼굴엔
당당함이 사라지고 당황스러움으로 덮이고 있었다.
왠지 운전석 옆 간이 의자가 내 자리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려주지를 않는다.
티켓 검사를 마친 뒤 기사님은 간이의자를 가리켰다.
타이어가 검은 액체로 변해 도로에 눌어붙으면 어쩌지
싶었던 뜨거운 여름날 커튼도 없는 통유리가 내 앞에,
다리 둘 곳 없이 붕붕 떠 있는 내 밑엔 계단이 있다.
시스템 오류로 오버 북킹이 된 것 같은데
이걸 뭐 기사 님께 따질 일도 아니었고,
일단 늦지 않고 버스를 탔다는 게 중요했다.
슬슬 이 경험이 재밌게 느껴졌다.
언제 또 버스 조수석에 앉아 도시 외곽 길을 달려보겠다 싶었다.
기사 님은 까칠한 인상이었지만 괜스레 미안했는지
가방을 무릎 위에 둔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당연히 스페인어였고 나는 못 알아듣는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근데 역시나 그는 스페인 사람이었고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여러 번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 그제야 손짓으로 말을 했다.
가방 옆에 창문 옆에 걸으라고 하는 듯했다.
그렇게 나름의 평온함을 느끼며 세비야에 도착했다.
운전을 끝낸 아저씨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는지 뭐라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Gracias"라는 말과 함께 무언가를 건네셨다.
Alsa 버스회사의 이어폰이었다.
처음엔 정말 주시는 건가 싶어 당황해서 바로 받지 못하고
멈춰 서 있다가 눈치껏 내미신 손에 작은 선물을 받아 들고
감사하다는 말도 못 하고 멋쩍게 웃었다.
버스에서 내리곤 생각했다. 참 귀엽고 고마운 아저씨라고. "데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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