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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Jul 09. 2020

코로나 집콕, <심신단련>하면서 만난 이슬아

연재노동자 이슬아 작가를 알게 된 행운


대형서점과 달리, 동네서점, 작은 서점에 들르면 절대 그냥 나오는 법 없이 한참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꼭 한 권씩은 마음에 드는 책을 구입하고 나온다. 합정역 부근 땡스북스에 들렀던 날도 그랬다. 새롭게 맘에 들, 아주 꽂힐 만한 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혀 서점 이쪽 저쪽을 눈으로 샅샅이 뒤지면서 빙글빙글 돌던 중 나를 사로잡은 표지 사진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슬아 작가의 <심신단련>이었다. 표지를 젖혀 작가소개 부분을 펼쳤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92년생 여자애(나보다 어려서 처음 본 순간엔 여자애라고 불렀다. 물론 마음 속으로.) 사진과 이름 그것말고는 어떤 정보도 없는 게 끌렸다. 꼭 다물고 있는 빨간 입술에서 허세없는 단단한 깡과 자기애, 선한 고집같은 게 느껴졌다. 철봉 위에 야무지게 앉아 있는 사진과 <심신단련>이라는 제목의 찰떡같은 궁합만 봐도 이건 읽어봐야겠다 싶어 들고 나오면서, 책이 마음에 들면 이 사진으로 만든 에코백이 생겨도 좋을 것 같단 생각을 잠깐 했었다. 꽤 두꺼운 <심신단련>을 정말 심신단련하듯 읽었고, 마침내 더 두꺼운 그녀의 책을 구입하리라 마음 먹었다. 이 좋은 느낌은 내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한참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그녀에게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그저 지나치지 않고 순간 포착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녀의 유년시절(‘과거의 슬아’라는 뜻에서 ‘과슬이’라고도 지칭한다.)과 현재, 미래에 대한 상상(‘미래의 슬아’라는 뜻에서 ‘미슬이’라고 지칭한다.)이 촘촘하게 기록돼 있다. 그날의 공기와 그 공간에 있던 이들의 숨소리, 둘러싸고 있는 소소한 풍경들까지 이슬아만의 필터링을 거쳐 온전한 문장으로 박제해 놓는 마술같은 능력을 가진 작가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내 책장에는 이슬아 파트가 따로 생겼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헤엄 출판사의 심플한 로고와 표지 사진들도 전부 마음에 든다.





결국 이슬아 작가의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심신단련>,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깨끗한 존경> 순으로 읽었고,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읽는 동안에는 동시에 ‘일간 이슬아 2020 봄호’를 정기구독해서 읽었다. ‘일간 이슬아 2020 초여름호’까지 그대로 이어서 구독한 충직한 독자가 된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왜 이슬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가.

맙소사, 상상했던 에코백이 진짜로 나타났다. 저 에코백을 들고 나가면 이슬아 작가의 잘 단련된 정신력을 부적처럼 들고 다니는 느낌일 것 같다.



일단, 악착같이 매일 써내는 이슬아라서 다행이고 고맙다. 그녀는 아무도 청탁 안해도 글은 쓴다는 신념으로, 이메일을 통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글을 보내주는 신개념 수필 서비스를 한 시즌에 단돈 만 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열심히 들여다보면서도 책은 종이 넘기는 맛이 있어야지 전자책은 별로라던 모순적인 나에게, 종이책 읽기와 이메일 구독을 통한 디지털 글 읽기를 병행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린 신기한 이슬아. 이슬아는 수필에서 만화로, 만화에서 서평으로, 서평에서 인터뷰 기록으로, 장르를 넘나들며 확장되어가는 자신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되, 무던한 표정을 짓고(<심신단련> 작가 프로필에 들어간 사진의 바로 그 표정!) 은근한 힘으로 끌어당겼다. 결코 요란하지 않은 방식이지만 한번 붙잡히면 정신없이 끌려가게 된다.


특히 <깨끗한 존경>에서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함께 서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 조금씩 더 궁금해진다. 세상에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늘 빚지며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빚진 마음을 가슴 속 어딘가에 몰래 숨겨놓고 살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이슬아가 와서 꾹꾹 눌러보며 확인시킨다. 그럼 그 마음을 내가 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이제는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변화가 그녀의 책이 가진 힘일지도 모르겠다. 주류, 라고 불리는 세계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읊조린다.


그리고 난 정말이지 웅이와 복희를 비롯해 고양이 탐이까지 그녀가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부분이 사무치게 좋다. 웃다가 결국 울게 된다. 깨끗한 존경심이 생기려고 한다.



처음 이슬아 작가를 만나게 해 준 서점 땡스북스에도 고맙고, 무엇보다 코로나 집콕 우울증을 잘 견딜 수 있게 해준 이슬아 작가에게 감사하다. 감히 여자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구독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끌리는 사진을 찍어준 사진작가 류한경 역시 고맙다. 주변의 소소한 모든 것들이 감사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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