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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Oct 03. 2020

목 따가울만큼 시원한 사이다 제목, 알 바야 쓰레빠야!

문연이 에세이 <알 바야 쓰레빠야>, 나를 지키는 현명한 주문

아는 사람이 낸 책을 직접 손에 든 경험이 처음이 아닌데도 이번엔 유난히 설렜다. 같은 시공간 속에서 즐거운 경험을 함께한 그녀라서,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 적어 보내준 정성스러운 엽서를 책과 함께 받고서 한참 망설였다. 바로 읽고 리뷰를 쓰면 마치 엽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 보답으로 쓰는 글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진심이 온전히 리뷰에 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읽고 기록을 남기기로 결정했다. 그 뒤로 6개월이 좀 넘게 흘렀다.

  

토요일 오후 2시, 같은 공간에 모여서 하나의 주제로 떠올린 각자의 글을 쓰고, 다쓴 글을 글쓴이의 목소리로 직접 읽고 듣는 간지러운 경험을 공유한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무언가 주기적으로 끄적이지 않으면 답답해서 못 사는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며 보듬어주는 모임이었다. 그녀의 글을 듣는 시간에는 바닷바람 부는 해안가에서 깊은 찌개맛을 맛보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가족들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종종 나 대신 답답한 세상에 돌직구도 날려주어 ‘언니, 멋져!’를 외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다른 이의 마음을 쓰다듬는 따뜻한 오지랖이 부럽기도 했다. 그렇게 인상적인 그녀였으니 이런 탄산 가득한 제목의 책을 스스로 펴냈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았지만, 반가웠다. 귀로 듣던 그녀의 글 작지만 따끈한 소장품이 되었단 사실에 내 일처럼 반가웠다.


 요즘 핫한 에세이들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며,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토닥이면서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니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고,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결심과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권유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목들만 훑어봐도 우리가 영혼을 갉아먹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 속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 극도의 압박감으로부터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글로 풀어냄으로써 자가 치유하겠다는 것에 대찬성이지만, 에세이가 그저 탈 압박감에 대한 무한 허용의 장이 되어 버린 게 아닌가 싶을 땐 좀 서글프기도 하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책들이 모두 정신적 치유를 위한 자기 세뇌의 결과물이라 말하는 건 아니고, 제목이 적힌 표지를 젖혀 한 장 한 장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치유가 곧 독자의 치유로 이어지는 바람직한 상황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런 문장들을 읽는 시간 자체가 곧 마인드 컨트롤을 허락하기도 하니 전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그렇지만 뭐든 ‘트렌드’로 묶이는 순간 식상해지니까 해본 소리다.


<알 바야 쓰레빠야> 역시 그런 고단한 삶으로부터, 이를테면 잘 나가는 타인과의 비교나 못 나가는 타인들의 시샘, 잘 나가고 못 나가고를 시도 때도 없이 가려내는 세상의 무례한 기준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데 유용하게 쓰일 강렬한 제목의 에세이인데, 다른 돌직구 위로형 에세이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 강원도 깊은 산 속에 자발적으로 고립되기를 망설이지 않고, ‘알 바야 쓰레빠야’ 정신으로 무장한 채 질투심과 과한 욕심을 멀리하되 주기적으로 혼밥을 자처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데 열심인 여자의 이야기로만 이 책을 설명한다면 다른 에세이들과 크게 다를 게 없어보이지만, 문연이 에세이에선 ‘내 사람’으로 받아들인 사람 관계에 대한 그녀의 ‘찐’사랑이 독보적이다. 그녀는 ‘알 바야 쓰레빠야’를 외치게 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어 끌어모은 온 에너지를 쏟아 가족과 친구, 여행길에서 만난 천사같은 사람들과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들을 글로 박제해 두었다. 그들과 함께한 순간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진심과 용기를 내어주는데, 그건 아마도 ‘쓰레빠’로 넘겨버릴 것들과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것들을 현명하게 구분해 낼 수 있는 그녀 특유의 영민함이 있었기에 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차가워져야 할 때와 뜨거워야 할 때를 아는 것, 충분히 차갑고 충분히 뜨겁게 행동줄 아는 것이 자기 삶에 대한 예의다. 한 편의 글이 끝날 때마다 그녀가 책갈피처럼 꽂아놓은 질문으로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책이라 약 200쪽 분량의 책을 거의 400쪽 정도로 읽은 느낌이다. 언제나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에필로그에 담긴 그녀의 소망은 분명히 이루어졌다. 마음이 저릿하게 소중한 기억들과 함께 잠시 한켠에 미뤄두고 보류해 두었던 작은 꿈들을 다시 꺼내어 들춰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평온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함께 글을 쓰던 그 공간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그만 핑계대고 얼른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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