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기발하고 세심한 상상력 덕분에 쉽게 몰입해서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특유의 감수성으로 만든 동화적인 스토리 안에는 인간 세상과 삶에 대한 은유를 담았다. <반지의 제왕>같은 명작에도 따분함을 느낄 정도로 판타지에 알러지 증상이 있는 나였지만, <위저드 베이커리>를 읽고 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어린 제자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마음이 좀 열렸던 것 같다. 그래서 책 읽기를 따분해하는 중학생들에게 추천해 줄 책을 찾으려고 우연히 펼쳤는데, 내가 10대로 돌아간 것처럼 신나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 <주토피아>, <주먹왕 랄프>, <코코> 류의 애니메이션에 이어 디즈니가 어서 빨리 이 책 속의 세계를 내 눈앞에서 움직이도록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2월에 비슷한 설정의 꿈속 세계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드림 빌더>)가 개봉한다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티저 영상을 찾아봤지만 처음 설정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작품인 것 같다.
때때로 꿈은 무의식이 만들어 낸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좋다는 건지 안 좋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해몽들을 찾아보다가 하필 왜 그런 꿈을 꾼 건지 알아내기를 결국 포기하고 만다. 밝혀내고자 시도한 이들은 많았지만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꿈의 세계를 흥미로운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 있다. 눈꺼풀이 감기면 렘수면 상태의 고객들은 달러구트가 운영하는 꿈 백화점에서 그날 밤 꾸게 될 꿈을 쇼핑한다. 고가의 한정판 희귀꿈부터 할인판매 매대에 뒤섞인 싸구려 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놀랄 만한 직업윤리의식을 가진 달러구트 씨는 그의 고객들이 꿈을 통해 현실 속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하던 사람이 클라우드 펀딩으로 발표한 첫 소설이라니, 이런 상상력과 표현력은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게 타고나는 천부적인 능력이지 싶다. 이미예 작가가 창조해 낸 이 환상의 세계는 내가 처음으로 <해리 포터> 이야기에 입문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그 때도 마법사 나오는 소설을 왜 읽냐며 책은 밀어뒀지만, 억지로 끌려들어간 영화관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보다가 두 번 정도 작은 탄성을 지르고 마음을 열었던 것 같다. 해그리드가 호그와트에 입학할 해리의 지팡이를 사러 가기 위해 어느 술집 뒤편 비밀스러운 벽을 몇 번 툭툭 건드리자 시끌벅적한 골목 풍경이 펼쳐졌을 때 한 번, 호그와트 마법학교 입학식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손가락 한 번 튕기니까 공중에 떠 있는 수십 개의 촛불에 불이 붙는 장면에서 한 번. 그러고도 뒤에 이어 나온 속편들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유난히 지쳐 있던 현실 속의 나를 잠시 동안 그 영화관의 나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과거의 어렵고 힘든 일 뒤에는, 그걸 이겨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우린 그걸 스스로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단다.(153쪽)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216쪽)
꿈 속 세계 판타지는 결국 꿈에서 깨어난 뒤의 새로운 시간과 삶을 위해 존재한다. 잠든 시간 꿈 속에서 경험하는 것들이 연약한 이들에게는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고 경솔한 이들에게는 잊지 말아야 한 것들을 떠올리도록 해준다는 설정이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잠들기 직전 반드시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