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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May 15. 2021

김신회 에세이 <가벼운 책임>,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감과 자유로움 그 사이 어디쯤에서 확실한 행복을 느끼는 법.


  개인적인 이유로 외출을 못하고 3주쯤 갇혀 있으려니 우울함에 온 몸을 담그고 액체괴물이 된 느낌이었다. 한 며칠은 활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다가 겨우 집어든 책이 김신회 에세이였다. 여름을 제일 싫어하는 나도 여름이 좋아질 뻔한 싱그럽고 유쾌한 <아무튼, 여름>의 그 김신회 작가가 쓴 책이라면 날 좀 일으켜주겠거니 했다. 


  <가벼운 책임>은 그녀가 반려견 입양을 결정하고 그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는 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낸 책이다. 처음부터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지난 삶의 과정을 '어른 됨'과 '책임감'의 잣대로 자기 평가하여 부족함과 두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가 또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가, 포기했다가, 다시 결심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사실 개를 포함한 모든 동물에 대해 심각한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반려견 입양 얘기가 나오면서부터 책장을 넘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모든 생명은 귀하고 숭고하단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목줄 없이 내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의 집 반려견(도무지 반려견일 거라 믿을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때문에 사지가 마비된 듯 땅바닥에 얼어붙어 뛰지도 못하고 아찔하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트라우마같은 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숨도 못 쉬고 서 있는 나를 조롱하듯 웃으며 '안 물어요'하고 지나가는 주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가에 대해 분노하곤 했다. 더구나 요즘은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폭이 넓어지다보니 반려견쯤은 그 크기와 종에 상관없이 쓰다듬을 줄 알아야 인간적인 것처럼 ㄴ껴져서 불편하기도 했다. 나같은 사람은 온 몸이 마비되고 땀이 흘러도 그냥 견디라는 건가 싶어서. 


  그렇지만 김신회 작가는 나를 또 마지막장까지 책을 다 읽을 수밖에 없게 이끌었다.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결심하는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가치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반려견을 키우는 데 따라오는 여러가지 번거로움과 수고스러움을 감당하는 과정이 한 사람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 이어졌다. 무엇을 고민하고 얼마나 실패하고 후회하면서 깨닫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저 '반려견을 키우니 내 인생이 이렇게 행복해졌어요.'하는 류의 글이 아니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의 문제를 '반려견'과 '사람' 둘 다의 문제로 생각하며 비뚤어져있던 내 마음을 바로잡고,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사람이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것'뿐만 아니라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도 포함한다. 


  동물권이 인권과 지속가능한 조화를 이루려면, '이렇게 귀엽고 연약하고 불쌍한 동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또는 '끔찍할 만큼 잔인하게 사육되는 동물들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고기 안먹을래요.' 에서 그치는 논의가 아니라, 보다 폭넓은 범위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권과 인권의 조화, 동물권과 동물권의 조화, 인권과 인권의 조화 세 영역이 교집합을 이루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논의 말이다.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만 되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흘러내리는 나에게, '내가 여름이 왜 좋은 줄 알아?' 들어나보라며 책 한 권을 읽게 하더니 이번에는 반려견과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로 나를 설득한 김신회 작가의 그 은근한 힘이 좋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어떤 대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잡고 열어보게 만드는 그 은근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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