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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May 15. 2021

싸이월드 덕후작가와 덕후독자가 만났을 때

박선희 <아무튼, 싸이월드> 83년생 여자의 싸이월드 라떼 이야기

미니미와 미니룸이 책표지가 되다니 신박하긴 한데, 잘 보면 진짜 미니미와 진짜 미니룸하고는 살짝 다르다. 이걸 알아보면 진짜 덕후다.


  짧게 요약하자면 '싸이월드 덕후였던 83년생 여자의 라떼 이야기'다.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가 싸이월드 덕후들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찔러대서 뜨끔뜨끔하게 하는 내용도 있고, 공감하며 박장대소하다가도 없애버리고 싶은 옛날 사진을 발견한듯 부끄러워진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이상한 애달픔과 향수에 젖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중간중간 별 표시 각주를 달아 싸이월드를 모르는 세대를 위한 배려가 담긴 설명이 있는데, 그걸 읽는 재미도 적지 않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 나는 싸이월드 덕후였다. 투데이 수 100을 넘기면 심장이 쿵쾅거리며 동네 셀럽이 된 착각에 빠지는 마약같은 쾌감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오그라드는 과거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실 미니홈피를 시즌별로 단장하고, 사진첩과 게시판에 메뉴별로 콘텐츠를 끌어모으는 일은 웬만한 덕후 성향이 없으면 귀찮은 일이다. 동시에, 거기 공개하는 글과 사진을 끊임없이 자기검열하며 '나 이런 사람이야' 표현하는 낯부끄러움을 즐기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쓰기'가 그 공간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믿는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을 꾸준히 쓰고 다듬는 연습을 했고, 그러다 결국 보일 수 없게 된 망한 글들은 비공개 처리하며 겸손해지는 연습도 했다. 그래서 유물처럼 남아있는 비공개 게시판 속 수많은 습작들은 싸이월드 덕질이 남긴 매우 값진 보물이다. 그 글들이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걸 쓰면서 감성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썼다지웠다를 반복하던 어린 나의 흔적들이라는 이유에서. 사실 싸이월드가 망했단 소식을 듣고 어렵게 기억해 낸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로그인 한 다음 제일 먼저 백업한 건 만 이 넘는 사진이 아니라 게시판 글들이었다. 소름돋게 민망스러운 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적어도 나의 덕질은 눈물 흘리는 사진까지 찍어 올리는 다른 덕후들의 허세하고는 좀 달랐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일촌명 짓기의 과정은 팔로우와 맞팔로우, 언팔로우가 버튼 하나로 끝나는 요즘 SNS에 비하면 얼마나 다정하고 정성스러운 관계맺기였는지.


  싸이월드의 인기가 얼마간 지속가능했던 것은 미니홈피가 '자기 표현'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타인 분석'의 공간이도 해서였다. 관심병이나 관음증의 공간으로 비하하는 사람도 더러 있긴 했지만, 미니홈피에 제각기 최선을 다해 드러낸 수많은 자아들은 그것이 설사 도토리 빻아 만든 거짓된 포장지라 할지라도 하필이면 왜 그런 포장지를 만들었느냐에 따라 진짜 모습을 추리해내는 일이 가능하게 했으니까 말이다. 어차피 싸이월드 이후에 등장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인스타그램에도 가식 없는 순도 100%의 자아란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SNS의 트렌드는 얼마나 다양한 플랫폼으로 고급지게 '부캐'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인가이지, 초기 싸이월드의 인기를 '거짓된 자아 만들기'라 우려하며 비난하던 사람들이 그때와 같은 비난을 한다면 이미 라떼시대 꼰대로 불릴지도 모른다. (2009년 개봉한 영화 <김씨표류기>에서 '여자 김씨'는 방에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채 미니홈피에서 끊임없이 가짜 자아를 만들어내는 히키코모리로 그려졌다.)  


망해가는 싸이월드를 인수한 새 기업이 열심히 리뉴얼 중이라는데, 끊임없이 최신 피드 쌓기만 고집하는 기존 SNS 생태계에서 싸이월드만 가지고 있던 고유한 감성을 기능적으로 되살릴수 있을까? 아무튼, 덕후독자가 덕후작가를 만나면 잃어버린 일촌을 만난듯 어느 때보다 끈끈하고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다. 아무튼 시리즈가 노린 게 이런게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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