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형 전시,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말하다
(혹시 전시 체험을 앞두고 있는 분은 스포일러가 있으니 갔다와서 읽으시는 게 좋습니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를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의 강연을 들었을 때였다. 당시 김영하 작가는 2, 30대 청년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엄청난 양의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안 될까봐 불안에 떨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간신히 취업을 하더라도 약속된 만큼의 노동은 물론이고 영혼과 자존심마저 요구하는 회사에서 버텨내야만 하는 이 엄혹한 시대에, 자기 내면을 지키며 인간답게 사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는 그 질문의 해답을 ‘감성 근육’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느끼며 어느 누구도 훼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감성을 단단히 지키려면 ‘감성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육체에 근육이 없으면 쉽게 피로해지듯, 감성에도 근육이 없으면 무언가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피곤해진다는 의미였다. 그 ‘감성 근육’이라는 것은 운동을 해야 신체의 근육이 살아나듯 모든 감각을 활용하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때 ‘어둠 속의 대화’라는 독특한 전시를 소개했는데,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완전히 새롭게 깨어나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나는, 스마트폰을 포함하여 2D, 3D의 화려한 디지털 매체들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종이 교과서에 적힌 시와 소설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느끼도록 하는 것에 매번 한계를 느꼈다. 아이들 스스로 문학 작품의 주제와 관련된 경험을 공유하게 하고 자기만의 개성을 담은 방식으로 표현해보게 하는 수업을 시도해왔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느껴보거나 표현해보는 시간보다는 누군가 잘 만들어 놓은 화려한 시각 매체 자료를 접하는 순간에 가장 빛나는 집중력을 보였다. 아이들에게 시각 외에 다른 감각들을 활용하는 경험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김영하 작가가 말했던 ‘어둠 속의 대화’가 떠올랐다. 알아보니 마침 북촌에서 전시가 진행중이었고, 나는 담임 학급의 아이들 몇몇을 직접 데리고 함께 전시를 체험한 후 서로의 소감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특별한 사제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반 SNS 공간에 간단한 이벤트를 공지했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에 함께할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았고, 이벤트 당첨자들은 담임선생님과 아주 특별한 시간을 가지게 될 거라는 문구만 포함시켰다. 다행히 아직 중학생인 나이에는 그런 문구가 신비주의로 잘 먹히곤 했으므로 이벤트는 꽤 성공적이었고, 네 명의 학생이 선정되었다. 그런데 막상 계획서를 작성하다보니, 내가 먼저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아이들에게 이 전시를 어떻게 안내해야 할지,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지 정확히 감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보다 일주일 정도 앞서 사전답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친구 두 명을 불러 함께 참여하는데, 막상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시장 입구에 서 보니 의외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생겼다. 빛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100분이라니, 그것도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 돌아다닌다니…….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는 건 무리가 아닐까, 김영하의 소설 <신의 장난>에서처럼 어둠 속에서 영영 탈출하지 못하는 어딘가로 끌려가는 건 아닌가 하는 어이없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겁쟁이 본능이 심장 박동 리듬에 맞춰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암흑의 세계로 들어가자마자 눈을 수십 번 깜빡였다. 그러나 이미 내가 있는 곳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어렴풋한 형태마저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 그 자체였다. 처음 겪어보는 어둠이라 심장은 더 요란하게 뛰었고 ‘진짜 아무것도 안 보여!’하는 소리를 친구들과 함께 또 열 번쯤 반복한 것 같다. 그 민망스러운 상황이 잠잠해진 건 우리 팀 로드가이드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부터였다. 마치 당신들이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위험한 공간은 절대 없으니 목소리를 잘 듣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팀별 구호를 정해 게임처럼 진행하자는 제안도 했다. 로드가이드가 단지 몇 개의 문장을 말했을 뿐인데 친구와 땀날 정도로 붙잡고 있던 손에 살짝 힘이 풀어졌다. 신뢰감 있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로드가이드는 훈남일 게 분명하다는 흐뭇한 생각을 하며 그때부터 나의 온 정신은 귀에 집중되었다. 나는 분명 북촌에 있는 회색 건물 2층에서 이 체험을 시작했는데, 숲속 산책로를 걷다가 선착장에서 배를 탔고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며 한옥의 대청마루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가 달콤한 향기가 나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차원이 다른 시공간을 넘나들 듯 어둠 속에서의 미션들을 차례대로 수행하는 동안 나는 차츰 눈을 감고 있는 것에 익숙해졌고, 귀에만 집중돼 있던 나의 모든 신경이 온 몸의 피부를 통해 손가락, 발가락 끝으로, 코끝으로도 뻗어 나가 깨어 있음이 느껴졌다. 빛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에는, 아이들에게 전시에 대해 소개할 내용과 체험 후 나눌 이야기를 미리 준비해보겠다는 나의 계획이 큰 오만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각하는 체험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느끼고 깨닫게 될 것들을 굳이 문자화하여 계획서와 보고서라는 한심하고 형식적인 틀 안에 가두고, 내가 아이들에게 무언가 전달해보겠다는 그 ‘의도’가 아이들의 체험을 오히려 방해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나는 아이들에게 전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북촌에서 ‘어둠 속의 대화’라는 전시를 함께 볼 테니 인터넷 검색은 절대 하지 말고 교통카드만 들고 따라 오라는 간단한 공지를 했다. 방과 후 북촌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네 명의 아이들은 선택받았다는 뿌듯함과 전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아이들은 마치 스무 고개 질문 놀이를 하듯 나에게 질문을 해 왔다. ‘선생님, 어둠 속에서 뭐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거나 놀라게 하는, 그런 건 아니죠?’, ‘그냥 불 꺼놓고 가만히 대화만 하는 거예요?’, ‘어둠 속에서 무슨 얘기를 해요?’, ‘선생님, 말 좀 해봐요!’ 등등 아직 중2병이 채 끝나지 않은 중3 아이들 특유의 말투로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은 암흑의 세계로 들어가기 직전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로 바뀌었다. 직원의 설명을 듣던 아이들이 최고 데시벨의 호들갑을 떨었고, 이번엔 ‘어떡해요, 못하겠어요.’, ‘선생님 저 꼭 잡고 있어야 해요.’, ‘아 선생님, 이거 왜 하자고 했어요?’ ‘지금 나갈 수 있어요?’ 소리가 이어졌다. 우리는 손에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곧 로드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다소 안정을 찾은 듯했으나, 이번에는 신박한 구호를 정하겠다고 다시 들뜬 아이들 때문에 그 차분했던 로드마스터의 목소리에도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아이들은 내 이름에 과하게 깜찍한 수식어를 붙여 우리 팀의 구호를 만들어 놓고 어둠 속에서 깔깔댔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잊고 즐겁게 체험할 수 있다면야 구호의 민망함은 나의 몫이겠거니 받아들이며 어둠 속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불과 일주일 전에 친구들과 미리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어둠은 새로웠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수업 시간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손끝으로, 코끝으로 느껴지는 모든 감각 하나하나에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로드마스터의 질문에도 매번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대화를 즐겼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영은아, 어디 있어? 내 팔 잡아.’, ‘우리 진짜 배 타는 거야?’, '나 놓지 마, 천천히 가.', ‘골목길 같은데 달달한 냄새가 나’, ‘이게 콜라야? 사이다야?’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이들은 매 순간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하나가 되어 그때그때의 질문과 소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대나무 가지를 만지며 들어선 숲속 산책로에서 새소리를 듣고, 흔들리는 배를 탄 후 폭포를 지나갈 때 튀는 물방울도 얼굴로 함께 느꼈다.
시장을 지나 한옥 대청마루 위에 어깨를 다닥다닥 붙이고 누워서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친한 친구도 여행 가서 잠들기 전에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가족처럼 더 가까워지듯이, 어둠 속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밝을 때 나누는 이야기보다 비밀스럽다. 아이들에게는 어둠이 없던 용기도 불어넣어 주었다. 이벤트에 당첨이 돼서 따라오긴 했지만 아이들과 친하지 않아 혼자 서먹했던 아이에게 나머지 셋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교실에서 얼굴 마주보고는 오그라든다고 절대 안했을 EBS 같은 질문을 공기 반 소리 반으로 잘도 던졌다. 혼자였던 아이는 평소에 학교에서 거의 존재감 없이 지내던 조용한 여자아이였는데, 처음에는 아이들 질문에 어색해하는 듯싶더니 경찰관이 꿈이라 오랫동안 태권도를 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했다. 아이들끼리 엄청난 데시벨의 감탄이 오가느라 로드가이드는 옆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아 고마웠다.
카페에 둘러앉아 음료를 마시는 마지막 코스에서 아이들에게 궁금해 죽겠는 대상은 로드가이드였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시 참여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오직 말로 어둠의 길을 안내했던 로드가이드가 시각장애인임을 알고 난 후에는 모두가 한동안 숙연해지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방명록에 체험 후기를 적어야겠다고 말할 때는 네 명 모두의 표정에 이전에 볼 수 없던 진지함이 묻어났다. 작문 시간에는 한 문장 쓰기도 어렵다고 투덜대던 아이들이, 각자 한두 장씩의 방명록 종이를 꽉 채워 자발적으로 후기를 남겼다. 시각장애인의 삶을 짧게나마 경험해 본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면서, 일상 속에서의 우리가 시각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지, 그 외의 다른 감각들은 제대로 느낄 줄도 모르고 느껴볼 생각조차 없었다는 것이 이보다 더 와 닿을 수는 없었다는 내용의 후기들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아이가, 소중한 것을 소중하다고 느끼며 살아갈 줄 알아야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동안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온 건지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단 한 번의 경험이 사람을 완전히 바꾸어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의미 있는 경험은 닫혀 있던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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