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작가의 에세이는 <오늘도, 무사>, <아무튼, 떡볶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순으로 읽었는데, 마지막 책이 이전 책들을 지탱하는 뿌리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전 책들이 책방무사를 운영하는 일에 대하여, 떡볶이를 사랑하며 만난 사람들과 떡볶이로부터 확장되는 인생의 맛에 대하여 다루었다면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은 그녀 자신의 삶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를 담았다.
풋풋한 새내기 시절 괜히 특별해 보이고 싶어서 싸이홈피에 종종 인디음악을 bgm으로 해놓곤 했는데, 요조가 부른 '사랑의 롤러코스터'를 배경음악으로 해뒀던 적이 있다. 이 노래는 요조 특유의 가만가만한 창법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울렁거리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노래다. 사실 그런 가사보다는 중간에 나래이션으로 '롤러코스터 출발합니다~ 사랑의~롤러코스터'(살짝 코가 막힌 목소리로 리드미컬하게 읽어야 한다.)하는 부분이 재미있어서, 요조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한참 시간이 흘러 <오늘도, 무사>를 읽고나서부터 진지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음악을 듣게 됐다. 그러다 그녀가 무언가 낭독을 하는 목소리를 듣고는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낭독을 하는 여자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실천의 힘으로 맞서는 그녀의 용기가 부럽다.
그녀의 문장은 그녀의 목소리와 닮아 가만가만 하면서도 경쾌하고, 위트가 있는데도 가볍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묘사할 때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129쪽에서 구미 할매떡볶이의 맛을 묘사한 부분이 기가 막히다. 여기에 다 옮기기엔 너무 길지만, 기억해두려고 일단 써놓는다. 음식의 맛을 문장으로 표현해놓은 문장 중 손에 꼽게 아름답다.
그렇지만 책장을 잠시 넘기지 못할 정도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은 이 부분이다.
"일 년에 한 번씩 나는 육식을 사랑하던 내 기원에 다녀온다. 동시에 내 신념을 자진해서 일부 더럽힘으로써(!) 내가 어쭙잖은 무결함의 도취로 가는 길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미연에 막는다"*(187~188쪽)
제목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에서 '실패'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보통 에세이에서 대개 실패라는 단어는, 실패를 사랑하라는 문장은, 서툰 자신을 쓰다듬고 다시 일어나라는 위로의 메시지에 그칠 때가 많지만, 그녀의 책에서는 다르다. 아니, 그밖에 다른 의미들을 더 포함하고 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공장식 축산의 잔혹함을 깨닫고 채식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동안, 자발적으로 정기적인 실패를 함으로써 사랑하는 타인들을 감싸안는 마음. 그녀의 신념에 동참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사랑하는 마음. 주관없이 흔들리는 삶은 불안하지만, 주관있게 흔들리는 삶은 아름답다.
제주도에 간다면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그녀의 서점 책방무사에 꼭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수산초등학교 앞 나무 정자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한아름상회라는 허름한 구멍가게 건물이 보이는데, 그곳이 책방무사다. 눈에 잘 띄는 간판도 없이 기존 건물을 최대한 유지하는 선에서 나무 책장과 선반으로 아늑하게 꾸민 책장은 딱 요조스러운 공간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은 확실히 주인장의 취향에 닿아있으면서도, 한쪽끝에서부터 ㄱ,ㄴ,ㄷ순으로 배열된 방식이 꽂혀있는 책들 사이의 위계 없이 두루두루 좋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 같다. 책방 오른쪽으로는 필름카메라를 파는 보라색 자판기가 있다. 귀엽고 쨍한 색감의 자판기 옆에 서서 그저 기념사진만 남길 수도 있겠지만, 고요하고 햇살이 잘 드는 수산 마을 골목을 걷다보면 따뜻한 느낌의 필름사진을 꼭 찍고 싶어진다. 자판기 뒤쪽으로는 카페 공드리가 있고, 카페와 공유하는 작은 뒷마당의 건너편으로는 '뒤에(dué)'라는 이름의 작은 공간이 또 하나 있다. 자갈 밟는 소리가 즐거운 뒷마당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밤 작은 콘서트가 열리기도 하고, '뒤에'에서는 제주를 찾은 작가들의 소규모 북토크가 열린다. '뒤에'에서 필름사진 현상도 가능하니, 책을 고르고 공드리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서 필름사진도 찍기 좋은 곳이다.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쓴 편성준 작가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날 저녁 수산리의 향기에 취해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책과 음악과 생명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달리기를 사랑하는 그녀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닮고 싶고 앞으로 계속 닮아가며 살겠다고 선언하듯 말한다. 나는 그녀를 닮아가고 싶다. 멋있으면 다 언니라던데, 요조 언니를 닮고 싶다.
최근에 <서울리뷰오브북스>라는 서평지에 실린 요조의 에세이 '맨발의 가로세로'를 읽다가 웃겨서 쓰러질 뻔 했다. 그런데 자꾸 생각이 난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쓰신 편성준 작가님이 북토크에서,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남는 글이 좋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