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됩시다>와 <표백>, 그리고 <한국이 싫어서>
나는 옳은 일을 하고 싶으며, 내가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확실한 도덕적 명령은 '살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식물 역시 생명이므로 나는 식물을 죽이고 싶지 않다. 동물의 알을 먹지 않는 것처럼 곡물이나 씨앗을 먹는 일도 피하고 싶다. (193쪽)
배양육 역시 살아 있는 생명이다. 요즘은 맛을 더 사실적으로 내기 위해 인공 뼈를 만들 때 골수와 신경을 만들기도 한다. 이 생명에 뇌가 없다고 해서 죽여서 먹어도 괜찮다는 논리는 내게 이상하게 들린다. 그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하면 동물성 플랑크톤이나 신경계가 엉성한 무척추동물들도 식용으로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런 식으로 경계가 조금씩 무너진다. 시신을 이용한 인육 요리라고 안될 것 뭐 있겠는가.(193쪽)
우선 첫째, 저는 '위대함'은 실제로는 별 중요한 의미가 없는, 고리타분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생략)… 위대함은 삶의 목표로 추구하기에 적당한 가치가 아닙니다. (346쪽)
둘째, 저는 현대에 대단히 중요한 과업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략)… 종교에 근거를 두지 않은 보편적인 윤리체계를 만드는 일, 국가‧대륙 간에 존재하는 부조리한 삶의 질 격차를 없애는 일, 경제의 활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일 등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업을 많습니다. (346~347쪽)
셋째로, 저는 과업과 무관하게 사람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백>을 쓰고 난 뒤 저는, '위대한 일'에 집착하는 세연과 달리, 남들이 무가치하다고 무시하는 일에 매달려 끝내 의미를 찾아내고야 마는 주인공에 대해 3년 안에 쓰려 했습니다. 그렇게 쓴 소설이 <열광금지, 에바로드>입니다. (후략) (347쪽)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 맨날 나와서 사자한테 잡아 먹히는 동물 있잖아, 톰슨 가젤. 걔네들 보면 사자가 올 때 꼭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 하나씩 있다? 내가 걔 같애.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고 여기는 그늘이 졌네. 저기는 풀이 질기네 어쩌네 하면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표적이 되는 거지. / 하지만 내가 그런 가젤이라고 해서 사자가 오는데 가만히 서 있을 순 없잖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은 쳐 봐야지. 그래서 내가 한국을 뜨게 된 거야. / 도망치지 않고 맛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 ….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동료 톰슨 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1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