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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Feb 06. 2022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관계와 기억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


  소설집은 잘 읽지 않아서 김애란 <바깥은 여름> 이후로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모든 수록 작품이 일관된 흐름 속에 와 닿는 소설집을 찾았다. 최은영 작가는 요즘 장편소설 <밝은 밤> 이후로 더 주목받고 있어 뒷북인 것 같지만, 이제라도 출간 순서대로 그녀의 작품들을 읽어보아야겠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복합적인 정서들을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최은영 작가의 말하기 방식이 좋다. 애써 기교를 부리려하지 않고 아무리 답답하고 불편한 감정도 그저 담담하게 풀어내는 특유의 어조가 있다. 서영채 문학평론가는 그것을 '순하고 맑은 서사의 힘'이라고 평하며 작품 해설을 달았다. 

그런 힘은 기본적으로 서사의 결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좀더 직접적으로는 최은영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면이 많아 보인다. 그들은 대체로 희미하고 조용한 사람들이고, 삶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우울과 슬픔 속에서도 서로 간의 유대와 공감의 끈을 놓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정감의 깊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한데 모이니 그것이 힘으로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최은영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거칠고 단단한 것만이 아니라 순하고 맑은 것도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277쪽)


  <쇼코의 미소>와 <씬짜오, 씬짜오> 두 편의 단편은 '관계의 반전'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며 읽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이 때로 가장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족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부분을 낯선 사람에게 이해받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전혀 위로를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가족으로부터 들은 한 마디의 말이 이상하게 오랫동안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친근한 관계라 여겼던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기묘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하고, 가족처럼 지내던 관계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지는 허무함을 경험해야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씬짜오,씬짜오/ 89~90쪽)


  특히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읽고 여운이 길었다. 동경과 연민, 분노와 좌절, 고마움과 죄책감, 동경과 수치스러움 같은 여러가지 감정들이 하나의 관계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깊이 몰입해 공감하며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용기와 인류애적 사랑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도무지 해결될 길이 보이지 않는 큰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이의 아픔을 함께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을 때 서서히 멀어지기도 한다. 한때 분명히 같은 세계에 살았던 이가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크게 싸우지 않고도 정서적, 물리적 작별을 고하는 것만이 서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 일은 단지 유년 시절의 순수함을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겁하게 찌들어가는 과정을 '성장'이나 '제 앞가림' 정도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죄책감을 잊은 척하고 살 만한 새로운 또래들을 찾아 무리 속에 숨어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무심하게 지나쳐온 것들은 언제고 반드시 가슴 속에 구멍을 낸다.      

엄마는 이모의 이야기를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 엄마는 이모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고, 이모에게서 연락이 오면 냉정하게 대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이모도 더이상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엄마가 이모를 부담스러워했다는 사실은 이모를 아프게 했지만 그만큼이나 엄마 역시 오래도록 아프게 했다.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115쪽)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관계, 가치관이 다르고 세대가 다른 관계, 그 모든 다름 속에서도 깊어지고 끈끈해지고 싶어하는 마음들, 뜻대로 되지 않는 어긋남의 순간들이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아름답게 슬프다. 특히,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 남아있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관계의 짙은 기억에 대한 구절이 기억에 남는다.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사람이 현생에 대한 기억 때문에 윤회한다고 했다. 마음이 기억에 붙어버리면 떼어낼 방법이 없어 몇 번이고 다니 태어나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말라고 했다. 안 그러면 자꾸만 다시 세상에 태어나게 될 거라고 했다. (<한지와 영주>, 164쪽)

그러므로 <미카엘라>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으로 손녀를 잃은 이가 쥐고 있던 기억은 타도 타도 사그라들지 않을 바로 그 숯과 같은 것이어서, 그 처절한 고통의 향이 전혀 관계 없어 보이던 이들을 공감과 연대로 감싼다. 슬픔에 잡아먹혀버리지 않으려면 함께 그 죽음의 원인을 계속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밀>에서처럼 유품을 유품인지도 모르고 끌어안아야 하거나, 닿지도 않을 편지를 쓰는 외로움에 갇혀 사는 건 더 비극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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