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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Feb 06. 2022

쉬운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는 진실, 그 따뜻한 위로

어른을 위한 성장 소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책을 다 읽고 나니, 볕이 따뜻한 언덕 위에 서서 멀리 겨울 바다의 눈부신 윤슬을 바라보며 알싸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었다. 공허하기도, 쓸쓸하기도 한데 어쩐지 한편으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에 갑갑했던 가슴이 뻥 뚫리게 시원해지면서 차분해지는 그런 느낌.


  옮긴이 권상미가 그랬듯이 이 작품은 어른을 위한 성장소설이다. 삼십대 중반인 나에게 앞으로의 삼십 년은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태도로 노년의 삶을 맞이하여 늙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젊음의 순간들, 아낌없이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애틋함을 잃지 않고 분명히 기억하고 끌어안으며 늙어가는 인생에 대해서 말이다. 미국인 작가가 미국적 삶을 다룬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지만,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정서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세밀하고 예민하다. 독자들은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매력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삶 속에 깊숙하게 담가졌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메인 주 크로스비의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적막한 산책은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자리에서 긴 여운으로 계속된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 속에는 죄책감이나 우울증, 트라우마, 배신감과 모욕감, 좌절, 열등감, 권태로움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관계와 사건들이 있다. 대개 그 사건들은 가족이라는 관계로 얽혀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잊힐 수 없는 것들이며, 배우자 간, 부모 자식 간의 켜켜이 쌓인 오해와 불안, 갈등과 불화, 원망과 회한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부서지는 햇빛과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춤을 추는 파도와 같이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살을 택한 이들은 남은 이들의 트라우마 속에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파도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정신을 잃은 누군가를 육지에 데려다놓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람과 함께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기도 한다. 당연하다고 기대하던 것들이 산산조각나버리거나, 온 힘을 다해 정성을 쏟누군가에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상처받기도 하는 것처럼. 타인의 아픈 사연에 함께 눈물 흘리다가도 속으로는 그 아픈 사연이 나의 사연이 아님을 다행이라 안도하며 갑자기 삶이 만족스러워지기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비아냥거리며 스쳐지나가거나 뒷걸음질치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기대고 나아가기를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이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124쪽)


누가 뭐래도 삶은 선물이라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라고. (227쪽)


  책을 읽고 곧바로 그 책을 영화화하거나 드라마화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작은 기쁨이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누가 올리브를 이토록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 사실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줬던 그녀가 올리브 역을 맡았다는 게 이 책을 집어든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4부작이라서 올리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만 그려지고 있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매우 익숙한(책으로 이미 그이들의 삶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주변 인물들을 만나는 반가움 뿐만 아니라 책과 살짝 다른 설정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올리브 역)는 이 드라마의 주연과 제작을 겸했다.



그녀는 걸음걸이와 말투, 눈빛으로, 심지어 눈가 주름으로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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