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에세이 <호호호>, 좋은 작품 뒤에는 좋은 '사람'이 있다
영화 <우리들>을 한 열 번쯤 본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하고 영화랑 엮어서 글쓰기 수업할 때 많이 활용하는 영화인데, 볼 때마다 곳곳에 숨겨진 섬세한 연출과 아이들의 연기력에 감탄하곤 했다. 그 <우리들>의 윤가은 감독이 에세이를 썼다길래 얼른 집어들었는데, 역시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 뒤에는 마음에 드는 좋은 '사람'이 있다.
나는 호(好), 불호(不好)가 매우 분명한 사람이지만, 분명한 만큼 '호'에 관해서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꾸준한 집착을 보일 정도로 열정적이다. 아직 30대 중반이지만, 나이를 한두 살 씩 먹어가며 깨닫는 건 불호(不好)인 것에 대하여 계속해서 분노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그것들을 나의 세계에서 얼마나 빠르게 차단해버릴 수 있느냐가 정신 건강을 결정한다는 것. 확실히 좋은 것들을 찾아 충분히 즐기는 게 행복하게 사는 지혜라는 것. 그래서 호불호가 아니라 호호호로 나의 시간을 채우는 일은, 살면서 겪는 잦은 실패와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이겨낼 가장 잘 듣는 약을 만드는 것에 다름없다.
윤가은 감독은 프롤로그에서 '영화 밖으로 밀어낸 수많은 나의 사랑들을 다시 돌아보고 되찾고 싶(9쪽)'다고 하면서, 소녀와 말실수, 꽃, 빵, 여름, 문방구, 청소, 별자리운세, 공책과 같은 작은 것들에 얽힌 일화들을 솔직하게 늘어놓는다. <아무튼> 시리즈의 짤막한 버전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늘 그 중심에는 영화에 대한 사랑, 부끄럽지 않을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이따금씩 괄호 안에 본문장 속에 숨은 속마음이나 반전을 적어놔서 쿡쿡 웃으면서 읽다가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김신회 작가 에세이를 읽을 때와 비슷한 문체다.
그녀의 호호호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호호호를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평생 직업이라 여긴 일에 대해서 깊은 회의감에 빠져 슬럼프를 겪는 동안 내가 가장 먼저 했던 건, 직업과는 별개로 그저 좋아했는데 밀쳐둘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닥치는대로 끄집어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를 돌보는 시간이 나를 조금씩 다시 일어나게 하고 있다. 대학 시절엔 영화가 좋아서 무작정 휴학계를 내고 영상자료원에서 하루종일 시나리오도 읽고 1인 감상실에 틀어박혀 흑백영화도 보면서 6개월 넘게 잠적하고 허세부리며 살았던 적이 있다. 빨리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길 바라셨던 부모님께 방문을 잠그고 숨어버린 사춘기 소녀처럼 마지막 반항을 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영화가 좋지만 최종적으로 선택한 나의 길에 후회는 없다. 한동안 못 봤던 영화들을 찾아보는 동안 나는 영화에도 호불호가 심하게 뚜렷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영화평론가든 영화기자든 그 당시 내가 로망을 가지고 있던 직업을 선택하려면 이렇게 치우친 취향으로는 멀리 가지 못했겠단 생각이 든다. 폭넓지 않아도 그저 내 취향인 영화 몇 편을 찾아내서 혼자 즐기거나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단 생각도 든다.
서른다섯이 되고 보니 어쩐지 인생이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는 문턱에 있는 느낌이 든다. <호호호>를 읽는 시간은 소심해보이지만 사실 털털하고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어떤 언니와 수다 떠는 무겁지 않은 시간이었다. 영화말고도 그녀의 취향과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남은 후반부 삶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오늘 저녁엔 그녀가 만든 또다른 영화 <우리집>, <콩나물>을 어서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