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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승 Nov 02. 2023

다시 한 발 내딛을 용기가 필요하다면

손미나의 산티아고 순례길,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손미나 작가는 수 권의 여행에세이와 소설, 자기계발서를 쓴 작가이지만 전 kbs 아나운서이면서 저널리스트, 사업가이기도 하며, 최근에는 영화 감독이 되기도 했다. 모두가 선망하는 kbs 9시 뉴스 아나운서였으면서도 거기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계속했던 그녀는 대학 시절부터 내 롤모델이기도 했다. 물론 내가 언론 분야에 몸담으려 했던 것도 아니고  여행작가를 꿈꾼 것도 아니었으나, 열정의 불꽃이 사그러들 정도로 현실에 치여 무기력해질 때쯤 그녀의 책을 읽으면 늘 활력과 삶의 의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대학 시절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읽고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그 두근거림이 뿌연 안개 속에 숨겨진 터널 같았던 20대를 통과하는 내내 나를 앞으로 전진하게 했다. 그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나는 마치 스승의 날 선생님을 찾아가는 감사의 마음과 비슷한 마음으로 새 책을 집어들곤 했다.


  이번 책은 그녀의 두 번째 스페인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답답한 병실에서 산티아고 순례길로 간접 여행을 하며 얻은 힐링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중간 중간 QR 코드로 그녀가(혹은 그녀의 팀이) 직접 촬영한 영상을 함께 볼 수 있어서 800km의 순례길을 직접 걷는 신체적 고통 없이 그저 눈과 귀와 가슴으로 즐길 수 있었다. 짐을 지고 얇은 스틱에 의지해 비, 바람, 추위와 더위를 뚫고 한 달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걷고 또 걷는 일의 피로와 고단함은 감히 다 짐작하기 어렵지만, 책을 읽는 일은 언제나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했으니 상상하고 추측하고 성찰하며 글과 영상을 통해 벅찬 감동을 느껴보는 것 그 자체로 또한 힐링이었다.


  가까운 동네 뒷산에 오르는 일도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할 정도로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마음을 먹어도 그 마음을 뒷받침할 체력도 없는 내가 심지어 입원 중에 이 책을 골라든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어쩌면 평생 가보지 못할 것 같은 곳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그 고단한 여정을 결심한 사람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몰입해서 읽었다. 그리고 '극한의 도전과 힐링이 동시에 존재(50쪽)'하는 순례길의 여정은 곧 시련과 환희, 고통과 기쁨 수없이 반복되는 인생 그 자체임을 깨닫는다.


  불필요한 짐은 덜어내고, 잠시 지나가는 비구름에 놀라지 않고,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유와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열린 마음을  갖고 꾸준히 욕심내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 순례길을 걷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다가, 언젠가 체력을 핑계삼지말고 짧은 구간이라도 쪼개어 진짜 그 길을 걸으러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번에도 그녀의 스페인 책 덕분에 다시 걸을 힘이 난다.


출발지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이 붙지만, 어디에서 걷기 시작하든 목적지는 단 하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도 각자의 출발지는 다르지만 인간의 유한한 삶이라는 길 위에서 같은 지점을 향해 걷는 순례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20쪽)


과거는 이미 내가 알지만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알 길이 없으니 현재를 살아야 해. 그저 현재에 집중해 살면서 받아들이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아.(154쪽)


자연, 환경, 내게 주어진 현실 그 무엇이 되었든 기본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 앞에 놓인 난제들이 조금은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잠시 멈추어 기다릴 줄 아는 이에게는 이내 다른 선택지가 보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의 반전이 있기도 한다.(181쪽)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온 마음을 다해 간절히 꿈꾸는 자들이 해내는 일인 것이다.(189쪽)


인생이란 결국 그런 건가 보다. 누구나 가슴에 응어리 하나 정도 얹어 놓고 살아가는 것. 각자의 짐을 들고 걸어가는 것. (199쪽)


따라서 원하지 않는 혹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대신 그런 일이 우리 삶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슬픔을 그저 짙은 슬픔으로만 묻어두는 대신 다른 빛깔의 옷을 입혀 간직하는 것이다.(267쪽)


손미나 작가의 유튜브 채널 '올라미나'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영상을 추가로 볼 수 있다. 영상은 글을 읽으며 하는 상상 여행의 맛을 충분히 즐긴 후에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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