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신고식이었다. 미나미 치토세 역 눈밭에서 양 볼이 빨개지도록 네 번째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 기사 할아버지는 친절하게 캐리어까지 들어주려고 했던 세 번째 버스 기사 오빠와는 사뭇 다른 무뚝뚝한 표정으로 문만 칙 열어주고는 알아서 타라고 했다. 안 태울 수는 없는데 태우기는 귀찮다는 그런 표정. 보통 이 정류장에서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본 사람이라고 다 친절한 건 아니겠지, 과도하게 포장된 친절보다는 오히려 진심이 묻어나는 표정이 더 좋을 때가 있지, 애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보았다. 안 귀찮게 얼른 타볼게요 하는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캐리어 손잡이를 쥐고는, 어서 짐칸 문을 열어달라는 무언의 눈빛 신호도 보냈다. 기사 할아버지는 짐칸이 다 차서 자리가 없으니 직접 들고 올라타서 통로에 두고 앉으라는 무언의 바디랭귀지로 답했다. 한 번에 못 알아들으면 그냥 문을 닫고 떠나버릴 것 같은 표정이어서 바짝 집중해야했다. 잠깐 스쳐 간 세 번째 버스 기사와 승객들이 그리웠다. 그들은 꽁꽁 얼어 있던 우리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정말 태워 가고 싶지만 삿포로는 안 가는 버스라 진심으로 안타깝구나 하는 표정이었으니까. 그런데 네 번째 버스 승객들은 희한하게 기사 할아버지와 비슷한 눈빛으로 우릴 쳐다봤다. 추운데 오래 문 열어놓기 싫으니 어서 타라는 눈빛, 쟤네는 뭔데 공항에서 안 타고 굳이 열차 타고 고작 한 정거장 와서 다시 버스를 타는 거냐는 눈빛, 그런 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다보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꽤 복잡하고 많은 메시지들이 말없이 오고 가는 신기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말보다 분위기로 알게 되는 것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렇게 몸으로 느낀 것들은 귀로 듣고 머리로 해석한 것보다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승객들이 기사와 닮아 있던 게 아니다. 어쩌면 기사의 행동과 표정이 승객의 태도를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문 열자마자 뛰어 내려와서 캐리어부터 번쩍 들어주던 세 번째 버스의 기사가 우리의 목적지가 삿포로라는 말을 듣고 진심으로(적어도 그때 느끼기엔 진심이었다)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을 때, 그 버스의 승객들은 창밖에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 거다. 반대로, 귀찮은 표정으로 앉아서 캐리어들고 빨리 올라타라며 손짓만 까딱거리던 그 기사의 몸짓을 보고 승객들은 '귀찮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 거다. 버스 기사는 적어도 운전하는 시간만큼은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목적지까지 그들을 데려다주는 리더다. 그리고 리더는 구성원이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짓는 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열차는 여전히 멈춰 있었고, 그날만큼은 결코 쾌속이 아니었던 쾌속 열차표 1070엔을 홋카이도 신고식 비용으로 지불했다.
낑낑대며 캐리어를 들고 올라탔더니 공간이 넓지 않아서 가운데 통로에 캐리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캐리어를 통로에 둔 채로 빈자리에 앉아 어떻게든 삿포로에 가게 되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 급하게 출발하는 버스 때문에 내 캐리어는 통로 뒤쪽으로 스르르 굴러가버렸다. 급히 몸을 틀어 손을 뻗어보았지만, 이미 내 손 끝에 닿지 않는 거리였다. 어떤 아주머니가 가까스로 캐리어를 막아내고는 어서 가져가라는 눈빛을 보내셨다. 이 버스의 눈빛 신호들은 죄다 차가웠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스미마셍', 하고 캐리어를 받아와서는 한 시간 내내 캐리어 손잡이를 붙잡고 있어야 했다. 분명히 나는 영화 '러브레터'의 '오갱끼데스까'에 감동 받아서 눈의 나라 홋카이도에 여행을 온 건데, '여행'을 온 게 맞는데, 나는 왜 출발한 지 열 시간 가까이 밥도 못 먹고 쌩판 처음보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주눅 들어 이러고 짐을 붙들고 있는 걸까. 짐도 풀기 전에 집에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었다.
삿포로의 숙소를 발견하고 우리는 거의 울 뻔했다. 빈티지한 매력의 Hotel Monterey Sapporo.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덕분에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 몬토레 호텔은 휴식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여행지였다.
몬토레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를 올려다보면, 슬금슬금 움직이는 눈금이 보인다. 역시 여행의 시작은 호텔이다.
공항에서 삿포로 역까지 오는 1070엔짜리 JR 쾌속 열차표를 미나미 치토세 역에서 환불도 못 받고 버린 셈이고, 힘겹게 올라 탄 버스에서 다시 1030엔을 낸 데다가 삿포로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였다. 마침내 발견한 몬토레 호텔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호텔 들어가기도 전에 건널목 앞에서 우리는 거의 울 뻔했다. 서울 집에서 출발한 지 열 시간 만에(거의 유럽에 갈 뻔했다) 도착한 이곳 호텔 로비의 직원들이 우리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넬 때에는 홋카이도의 혹독한 신고식을 용케 잘 치렀으니 이제 드디어 여행하셔도 됩니다, 하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었다. 호그와트 마법의 성에나 있을 법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빈티지한 가구가 매력적인 방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니, 여행 일정 수정이고 뭐고 일단 쫄쫄 굶은 배부터 채우러 나가야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여행 와서 첫 끼를 로손 편의점같은 곳에서 때울 수는 없었다. 첫 끼마저 실패하면 정말 다시 짐을 싸서 떠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맛집 검색할 힘도 없었으니, 예정대로라면 1시 반쯤 점심을 먹었어야 할 니조이치바(니조시장)에 가서 점심과 저녁 사이의 어중간한 끼니를 최선을 다해 맛있게 해결해 보기로 했다. 걸어서 흐느적 흐느적 걸어나갔는데, 홋카이도는 오후 4시만 넘으면 해가 진다더니 정말로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아침 일찍 홋카이도 도착해서 지금까지 짐 푼 것 말고는 한 게 없는데 날이 저물다니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던 그때, 짐 풀고 몸이 가벼워지고나니 그제서야 삿포로의 눈이 제대로 보였다. 거리마다 양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눈, 분명 제설 작업을 해서 양쪽에 눈을 밀어놓은 것일텐데 차도 말고는 바닥에도 전부 눈이었다. 이게 도대체 죄다 눈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드디어 눈 여행이 시작됐다는 게 실감이 났다.
3박 4일 동안 평생 밟을 눈을 다 밟고 온 것 같다. 여긴, 시작에 불과했다.
차도만 빼고는 온통 눈이다. 니조이치바는 몬토레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해산물 시장, 니조이치바. 폐장 시간이 다가오는 듯해서 서둘러 들어갔다.
하얀 눈이 반사판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건지 막 찍어도 화보라며, 니조이치바 가는 길에 찍은 사진 몇 장으로 금방 들뜬 초긍정의 우리는 배가 더 심하게 고파졌다. 그래서 니조이치바에 도착해서는 해산물 구경도 하지 않고 곧장 '오이소'로 향했다. 어서 이리 '오이소'하는 것 같았다(원래 배가 고프면 언어유희의 질이 급격히 떨어진다.) '배틀 트립'에서 박나래와 장도연이 그렇게 호들갑을 떨던 오이소의 카이센동을 꼭 먹어보겠다며 연어회와 킹크랩살, 연어알이 올라간 빅사이즈 하나와, 참치회에 킹크랩살만 올라간 스몰사이즈 하나를 주문했다. 무심코 한 입씩 먹었는데, 우리는 둘다 눈이 동그래졌다. 방송에서 박나래와 장도연이 보여준 격한 리액션은 그저 방송을 위해 만들어 낸 인위적인 호들갑이 아니었다. 100% 진정성이 담긴 거였다. 아니, 오히려 표현이 덜 됐을지도 모르겠다. 연어회를 한 입 먹고 이게 정말 내가 알던 연어가 맞나 유심히 쳐다보다가, 연어알을 입에 넣고 터뜨리는 순간 입안이 바다가 되었다. 몹쓸 표현력의 한계...어쨌거나 열 시간 만에 먹은 우리의 첫 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사실 밥그릇 위에 회와 게살을 소복하게 얹어놓은 이 카이센동말고는 장국과 간장 종지만 있고 그 흔한 단무지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카이센동 하나면 다른 거 필요없이 이미 충분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홋카이도는 역시 해산물이다.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게 맛있잖아. 비린 맛이 전혀 없는 싱싱하고 탐스러운 연어알은 시간이 지나서도 머리가 아니라 혀로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맛이었다.
(빅사이즈) 터뜨리면 입 안이 바다가 되는 신기한 연어알. 킹크랩은 탱탱하게 살이 올라 거의 그릇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스몰사이즈) 참치회의 빛깔이 예사롭지 않다. 살짝 구겨져 있는 모양이,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오이소에서 카이센동을 거의 입에다 쓸어담듯이 순식간에 해치웠다. 한두 번 맛을 음미하고 리액션을 몰아서 다 해버린 후에는, 허기진 속을 급하게 채우느라 속도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날이 자꾸만 어두워져가니 먹느라 시간을 다 보낼 수 없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이소에서 나와 오도리공원 쪽을 바라보니, 밥 먹으러 오는 길에 본 테레비타워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옷으로 갈아 입고 서 있었다. 테레비타워가 서 있는 오도리공원은 여름엔 맥주에 양고기파티, 겨울엔 눈 축제가 열리는 삿포로의 핫플레이스인데, 이 날은 2월 초부터 열릴 눈 축제 준비로 다른 행사는 없었다. 그래서 눈 쌓인 한적한 오도리공원에서 테레비타워하고 인증샷 좀 건져보겠다고 이 각도 저 각도로 대략 30분 정도를 연구하며 어렵게 목적 달성을 하고 주변을 더 돌아다녔는데 금세 날이 깜깜해져서 제대로 된 사진은 몇 장 찍지 못했다.
호텔에서 니조이치바로 가는 길에 찍었던 테레비타워
여행지에서 만나는 밤거리의 불빛들은 언제, 어디서나 감성적이다
테레비 타워는 오후 5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날은 이미 밤 11시 27분처럼 깜깜해졌다. 스스키노 거리에서 그 유명하다는 삿포로 클래식 나마비루를 맛보고 호텔로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스스키노 가기 전까지 한두 곳 더 둘러볼 만한 장소를 찾다가 삿포로 팩토리로 향했다. 아주 가깝지는 않았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고,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삿포로 시내를 둘러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삿포로 팩토리는 1876년 맥주 주조장으로 지어졌던 건물이라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프리미엄 아울렛 건물 형태의 대형 쇼핑몰이 되었다. 붉은 벽돌 맥주 주조장 건물이 아치형 현대식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맛집과 쇼핑몰을 구경하면서, 일본 오면 다들 한 번은 찍는다는 자판기 사진도 한 번 찍고,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에서 기념품을 몇 개 샀다. 홋카이도 특유의 느낌을 담아올 수 있는 공방에서 파우치를 몇 개 사느라 시간을 보낸 것 말고는 딱히 쇼핑에 들인 시간이 없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브랜드 매장들이 즐비한 구역은 빠르게 패스하다보니, 다 둘러보는 데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붉은 벽돌의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답다. 벽돌 사이 사이로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것이 아니라, 굴러온 돌이 박힌 돌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는 것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힌 돌이 더 멋스럽게, 굴러온 돌은 굴러온 이유를 다할 수 있게 그 자체로 둘 다 빛나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나라에서는 오랜 시간 쌓여 온 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함과 과하지 않은 자신감, 남이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개성이 느껴진다. 내가 영국 문화와 일본 문화에 특히 관심을 갖는 이유다. 하루가 다르게, 아니 일 분 일 초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찾아 온전히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진다. 역사는 역사책으로만 기록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공간이, 또는 내 옆집 건물이 전부 다 역사가 될 수 있다. 허물어버리고 새로 짓는 동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 없는 사람들은 역사가 없는 삶을 산다.
맥주 주조장 건물 바로 맞은 편에 연결된 아치형 쇼핑몰. 가운데에 광장을 두고 타원 형태로 맛집과 브랜드 매장들이 가득하다.
지나가는 일본인이 자판기를 찍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저는 자판기가 신기해서요.
이국적인 풍경은 무엇이든 새롭고 신기하다. 벽에 붙어 있는 할인 상품 광고지를 보고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데, 자판기 안에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가 동글 동글 귀여운 글씨로 박혀 있는 수십 개의 패트병들이 몸 속에 무슨 맛일지 모를 나름의 액체를 품고 서 있으니 그건 더 신기할 수밖에 없다. 여행자의 눈에는 스마트폰 카메라 어플처럼 자동으로 필터가 씌워진다. 별 것 아닌 것들이 별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필터 말이다.
해가 일찍 지는 홋카이도에서 JR 연착으로 무려 세 시간을 버린 건 꽤 타격이 컸다. 그렇지만 자유여행엔 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더 큰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니까 우리는 조금 더 어둠을 즐기기로 했다. 원래 이 시간엔 '삿포로 비루엔'이라는 곳에서 징기즈칸 요리를 먹어볼 계획이었지만, 점심도 아니고 저녁도 아닌 식사를 이미 해버렸으니 무제한 양고기에 생맥주를 마시는 건 무리였다. 스스키노 거리에 가서 간단히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만 한 잔씩 하기로 결정했다. 스스키노는 반짝반짝이 아니라 번쩍번쩍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길거리에 별로 사람이 없는 다른 삿포로의 거리(나중에 알았지만, 다들 눈 때문에 지하도로 다니는 거였다)와는 달리 여기저기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삿포로 사람들은 밤에 다 여기 모여있는 것 같았다. 살짝 오다기리 조 느낌이 나는 패셔니스타들도 여기저기 구부정하게 걸어다니고, 미야자키 아오이처럼 귀엽게 머리에 뽕을 넣은 여자들도 긴 힐부츠에 짧은 치마를 입고 눈 쌓인 거리를 잘도 걸어다녔다. 런던에 갔을 때 거리의 남자들은 전부 휴 그랜트나 콜린 퍼스 같아 보이고 여자는 죄다 헤르미온느 아니면 키이라 나이틀리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나의 눈은 스스키노에서도 괜한 시력 발휘(?)를 했다.
스스키노 맛집을 미리 알아보지는 못해서 한참을 헤매다 들어간 곳은 닭을 굉장히 여러 부위로 나누어 다양한 닭꼬치 메뉴를 제공하는 이자카야. 메뉴판 사진 찍어서 구글 번역기 돌려가며 열심히 정독했지만 그리 당기는 메뉴가 많이 없어서 쫄깃쫄깃한 닭고기가 들어간 메밀국수와 통감자구이, 닭다리살 꼬치를 주문했다. 그리고 사실 오이소에서 이미 한 잔 맛을 보았지만, 홋카이도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 맛은 연어알 다음으로 충격적이었다. 신맛과 고소한 맛과 탄산의 완벽한 균형!(결국 면세점에서 사오고 말았다.) 이 맛에 반해 오이소에서부터 몇 잔 들이켰더니, 볼이 살짝 발그레하면서 따뜻해졌다. 미나미 치토세 역에서 추위에 떠느라 빨개졌던 내 볼은, 몇 시간 만에 삿포로 클래식 나마비루에 감탄하며 다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행 기간 내내 이 나마비루는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해 내 볼을 빨갛게 물들였는데, 그래서 볼빨간 여행의 첫날 술을 거의 못하는 나에게까지 이런 기쁨을 선사해주는 맥주가 고맙기까지 했다.
따끈한 메밀 국수 국물이 좋았다. 몸도 녹이고, 마음도 녹이고.
닭다리살 꼬치는 글쎄, 난 그냥 BBQ 취킨의 닭다리가 그리워졌다. 통감자구이는 놀랍게 부드러웠다. 홋카이도산 감자일까?
오사카는 글리코상이 지키고, 스스키노는 니카 아저씨가 지켜요.
호텔에 돌아오면서 로손 편의점에 들러 내일 먹을 조식을 구입했다. 이 많은 게 정말, 조식 맞니?
긴 하루를 보냈다. 삿포로에 못 올까봐 전전긍긍, 추위에 떨고 기다리고 짐 끌고 이동하고 배 채운 시간이 90%였던 홋카이도의 첫날, 둘째날엔 홋카이도가 조금 더 대지의 문을 열어 우릴 받아들여주기를, 기도하고 잠든 밤이었다. 셋째날 경험하게 될 더 공포스러운 순간은 아직 예상할 수 없었던, 그래서 평화롭고 설레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