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쇠사슬에 묶인 코끼리처럼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한 발짝 두 발짝 나아가고 싶어요.
- 김창옥<나를 살게 하는 것들> -
인간에게 최소 한 개씩은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트라우마이다.
트라우마의 사전적 정의는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이다.
외상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되어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빠지면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틀에 가둔다.
이는 더 이상 비슷한 일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보호본능으로 작용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이성과 아픔을 느끼는 감정이 만나 하나의 보호막을 만든 것이다.
과거의 나도 아버지로 인해 만들어진 상급자 트라우마가 있다.
업무를 할 때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다.
보고는 해야 하는데 혼이 날까 무섭고 떨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나는 보고를 미루고 미루다 임박해서 보고하고 부리나케 일을 처리한 적이 있었다.
상급자 트라우마는 지금도 나를 가끔 괴롭혀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트라우마의 틀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다.
내 트라우마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씌운 트라우마는 그저 나를 지키고 감싸기 위한 보호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애써 트라우마의 틀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닌 벗어나도 된다.
내가 업무를 잘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며 상급자가 질책을 하는 건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닌 업무에 대해 언급할 뿐이라는 걸 스스로 깨달았다.
순수하게 업무적인 요소로만 바라보니 트라우마는 마치 여름 한낮의 무더위에 거추장스럽게 걸쳤던 외투와 다름없었다.
즉, 불필요한 감정의 짐이었던 것이다.
그저 나를 지키고 안정된 삶만을 추구했더라면 지금의 트라우마는 굳이 애써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심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내게 채워진 마음의 족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트라우마는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한때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마음의 갑옷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갑옷은 영원히 입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무겁다.
오늘 조금만 용기를 내어 그 무게를 내려놓자.
상처를 바라볼 수 있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상처를 넘어설 힘을 가지고 있다.
인생에 감성을 더하다~!
감성부산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