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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Jun 11. 2019

Cabin fever 극복하기

라히마 볼드윈 댄시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2

p.79 오늘날에는 아이들과 집에 있는 일이 왜 그리도 어려울까?
한 가지 요인은, 예전과 달리 오늘날에는 핵가족과 그보다 더 분화된 가족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요인은, 우리의 관심이 가정을 꾸리면서 하는 "일들" 대신에 아이한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 현대적 삶은 어린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포함해서 일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 "하루 종일 함께 놀고, 말을 걸어주고, 칭찬해주게 되면, 아기의 정당한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이의 팔에 안겨서 관찰하는 단계를 아기한테서 빼앗는 셈이 된다 ... 아기가 진짜 바라는 것은, 부모가 단지 자기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살아가는 삶에 참여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모방하게 될 진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p.83 의식적으로 가정을 만들기
마치 과거로 돌아가서 여성들이 가사 일을 해야만 한다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차이는, 우리가 이 일들을 의식을 가지고서,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더 테레사는 아주 하찮은 일을 커다란 사랑을 가지고 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므로 식탁 위에 놓은 꽃병에 꽃을 꽂거나 부엌 바닥을 걸레질할 때, 여러분은 이런 일들의 특성을 의식하면서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몸을 움직이며 하는 이러한 일들이 어린아이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차이는, 원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걸레질하기, 욕조에서 깔개 빨기, 다림질하기, 손으로 돌리는 분쇄기로 곡식을 빻기, 빵 굽기, 찬장 정리하기, 장난감 수선하기, 나무를 매끄럽게 다듬기 같은 일들은, 지금 시대에 우리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예스럽고 별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여러분에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징징대는 두 살짜리 아이를 끽소리 못하게 할 수 있고, 여러분 머리를 잡아당기는 아이를 떼어놓으려고 DVD 플레이어를 작동시키지 않아도 일이 잘 되어가게 만들 것이다.


가끔 육아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 주로 연세 많은 남자 어른이 "집에서 혼자 애 보면서 심심하지 않니?"라고 걱정해주는 말씀을 하신다. 심심이라니. 제발 심심해지고 싶다. 심심하기는커녕 아이 뒤치다꺼리하면서, 온 가족이 매일 먹고 입고 자는 일에서 파생되는 일들을 겨우 처리해내며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고 있다. 정말 모르시는 분들의 말씀인 걸 알지만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맥이 빠진다. 우리 어머니 세대와 달리 시집살이도 없고 풍족한 현대 문명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나는 아이 하나를 돌보는 게 왜 이리 힘든가 자조하게 된다.


그런 나에게 답을 주는 페이지였다. '엄마의 일'을 분배할 사람 없이 24시간 고립되어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핵가족 구조의 현대적 육아가 더욱 어려워진 게 사실이라는 말이 위로를 준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고립된 공간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멀미를 느끼는 엄마들의 증상에 'cabin fever'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어로 '멀미'라 번역되어 있지만 나에게는 '밀실 공포증'는 표현이 더 와 닿는다. 여기서 cabin fever의 대책으로 아이에게 어른들의 일하는 삶을 보여줄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가정을 만들기'를 제시하고 있는데, 나는 그보다 여러 제약을 받으며 아이와 단 둘이 긴 하루를 보내는 일이 'cabin fever'라는 용어로 표현해도 될 만큼 힘든 일임을 사회가 인정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의식적으로 가정을 만들기'도 의미 있는 주장이다. 가사 노동에 시간을 빼앗기는 동안 아이와 상호작용하지 못해 미안하고 '해봤자 테도 안 나고 성가시기만 한' 집안일로 내 소중한 시간을 소모하는 게 억울했다. 그런데 오히려 집안일에 전념하는 것이 아이를 잘, 그리고 쉽게 돌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니 눈이 크게 떠진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화려한 장난감보다 내가 뚝딱거리는 주방 도구에 관심이 더 많으며, 남편이 공구세트를 열고 벽에 못을 박을 때 아이돌을 선망하듯 열광하며 달려든다. 집안일은 단순 노동이 아닌 어른의 삶,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에게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수준 높은 육아의 한 도구가 될 수 다.


아이를 재우고 밤 9시 반, 10시에 전쟁이 지나간 자리와 같은 거실과 부엌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해야 할 때, 압도되는 느낌을 수용하고 엔트로피가 조금씩 감소되는 걸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아이는 잠들어 보지 못하는 시간이지만 집안일을 대하는 나의 그런 태도 - 아주 하찮은 일을 커다란 사랑을 가지고 하는 태도 - 는 낮 시간까지 이어져 아이에게 전달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가치 없는 일에 시간과 체력을 쏟고 있다는 오해에서 벗어나 매 순간 행복해지기 위해, 집안일에 전념하는 훈련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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