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사색_ 11
주책없이 감기에 걸렸다. 미열이 슬슬 오르더니 콧물이 속절없이 흐르고 재채기가 팡팡 터져 나온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지극히 사소한 감기에 걸렸다고 일상이 변하는 건 없었다. 하지만 백일 된 아기를 온종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아기 엄마에게는 중병이며 중죄다. 모유를 잠시 중단하고 약을 먹으라는 권유도 있었다. 내 감기는 약을 먹으나 안 먹으나 일주일 갈 것이요, 관건은 아기에게 옮기느냐 마느냐이니 아기 침대 옆에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비장하게 전시하고 전염을 막는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갑자기 등장한 ‘하얀 마스크’가 누구신지 보석이가 헷갈려할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엄마의 눈을 알아보는 듯했다. 입이 안보이니 눈으로라도 열심히 웃어주었더니 보석이는 따라 웃기도 하고, 뭐 엄마 입이 보이든 말든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보다는, 내가 늘 보석이 얼굴에 퍼붓던 뽀뽀 세례를 할 수 없게 된 게 아주 고역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일주일 동안 뽀뽀가 금지되자 내가 보석이에게 뽀뽀하려는 충동이 얼마나 자주 생기는지 세어볼 수 있게 되었다. 꼬물거리는 아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지 언어가 따라오지 못하기에, "아고 이뻐~"만 연발하며 입맞춤하는 게 최선인 순간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다. 내가 이렇게 자주 보석이를 괴롭혀 왔는지 몰랐다. 입술은 나의 가장 부드럽고 연한 신체 부위지만 보석이의 순결한 피부에는 견줄 수 없다. 혹시 피곤에 각질이 일어낸 내 입술이 보석이의 피부에 보이지 않는 생채기를 내지는 않았을까?
만약 어떤 이유로 계속 뽀뽀할 수 없게 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아기를 안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는데 뽀뽀 정도야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겪어보니 꽤나 괴로운 일이다. 내 아기에게 맘대로 뽀뽀도 못 한다니! 억울하고 서글플 것이다. 입술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고, 나나 아기에게 뽀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없음에 감사했다. 감기라는 불청객이 굳이 쥐어주고 간 새로운 깨달음이다.
일주일 후 감기 증상이 거의 소실되었다. 아주 가끔 콧물이 나기는 하는데 나는 더 이상 뽀뽀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 마스크를 벗어던졌다. 입술에서 먼 쪽 볼에 밀린 뽀뽀를 해보니, 웃음이 많지 않은 아기인 보석이가 살짝 미소 짓는다. 고맙다, 내 뽀뽀를 싫어하지 않아 줘서. 아니 싫어도 어쩔 수 없단다. 사춘기가 오기 전까진 계속 엄마의 뽀뽀를 각오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