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인형 Jul 11. 2019

엄마의 일

육아와 사색_ 13

삼십 년 넘도록 함께 살면서 엄마가 늦잠 자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본 적 역시 단 한 번도 없다. 엄마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있었다. 화장실이 붐비지 않도록 다른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씻고,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는 딸들을 수차례 불러 깨웠다. 따뜻한 밥과 국을 준비하고, 각기 다른 시간에 나갈 준비를 하는 가족들에게 매번 아침상을 냈다. 필요한 옷은 빨래와 다림질이 다 되어 있어 찾아 입고 나가기만 해도 되었다. 그러다 간혹 엄마가 나를 깨우지 못해 지각하거나 아침상의 메뉴가 입맛에 맞지 않는 날이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엄마에게 무언의 비난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 후회되고 후회되는 순간이다.     


결혼을 했을 때도 새로운 의무가 적잖게 생겼지만 출산을 한 후에는 하루 일과 전체가 의무로 채워졌다. 원더윅스로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를 데리고 힘겹게 외출을 다녀와 간신히 재우고 나니 자정쯤 된 날이 있었다. 산후 회복이 덜 된 상태라 온 관절과 근육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씻을 힘도 없이 기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할 힘도 없이 기절할 지경’은 혼자 살 때, 내가 엄마의 딸이었을 때나 쓸 수 있었던 표현이다. 죽을만큼 피곤해도 외출했던 짐을 정리하고 아이가 사용한 젖병이나 노리개를 씻고 소독해야 하며 내일 나와 남편이 먹을 밥을 짓기 위해 쌀을 안쳐야 한다. 몇 시간 후 일어나 수유를 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할 일을 그대로 남겨두고 소파에 잠시 누워 시쳇말로 "이게 실화냐?" 하고 중얼거렸다. 피곤한 하루를 보냈다고 다음날 늦잠을 자거나 하는 일은, 앞으로 적어도 십 년 동안 단 하루도 허락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사이보그도 아닌데 말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던 게으름뱅이였다 해도 얄짤없다.      


Photo by Flora Westbrook from Pexels


육아는 무한한 반복 노동으로 구성된다.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크지만 엄마는 무서울 정도로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목욕시키고, 침과 토가 묻은 아기 옷을 빨고, 젖병이나 노리개, 장난감을 씻고 소독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 반복적인 일을 해온 게 하루 이틀.. 벌써 백사십 일이 넘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세월 동안 이 일을 할 게 분명하다. 내가 이렇게 꾸준하고 한결같은 사람이었나? 전혀 아니다. 나는 반복되는 일에 쉽게 질려 하며 금방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내 자신을 위한 일이었으면 애초에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어깨를 으쓱 하며 난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아기를 먹이고, 재우고, 목욕시키고, 빨래를 한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들어서 가까스로 해내는 날도 많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처음보다 덜 힘들다고 느낀다. 우리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어가는 중인 모양이다.    


나는 엄마의 일관성이라는 덕목을 당연하게 여겼다. 엄마가 처음부터 일관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는지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엄마의 일이 내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나의 권리를 빼앗긴 듯 불평했다. 하지만 엄마의 일관성은 본디 가지고 있던 것도, 나를 낳자마자 즉시 획득된 것도 아니었다. 갓난아기였던 내가 서서히 성장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엄마도 많은 노력과 눈물을 모아 엄마가 된 것이었다.      


결혼 전으로 돌아가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집에서 아침을 맞이할 기회가 온다면, 엄마에게 늦잠 잘 기회를 선물하고 싶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을 자각하지 않고 완전히 당신 자신으로 살 수 있는 단 하루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 다른 가족의 일정과 부엌의 일 등을 내가 다 위임하겠다고 해도 엄마는 태평하게 늦잠을 주무시지 못할 게 뻔하지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천사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