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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Aug 07. 2019

헤어컷

육아와 사색_ 19  헤어 디자이너의 장인 정신에 감사하며 

 임신 막달부터 출산 후 반년이 넘게 지나는 동안 머리카락이 무성히 길었지만 미용실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면 아기를 맡길 엄두가 나지 않았거니와, 수유 중이고 아이와 24시간 붙어있으니 염색이나 펌은 꺼려졌다. 해봤자 커트인데, 실은 피할 수 없는 출산 여파로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씩 빠지고 있어 숱도 없고 윤기도 없는 머리를 가지고 커트해봤자 전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할 현실을 마주할 게 두려웠다. 차라리 복직하기 전까지 한 일 년 정도 외모를 포기하고 살자 생각했다. 어차피 맨날 면 티에 머리 질끈 묶고 사는데 굳이 머리카락에 돈 들일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아기와 나를 찍어준 사진을 보고 어떻게든 조치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정리 안 된 반곱슬의 긴 머리는 아줌마 인증이나 다름없고, 휑하게 드러난 옆 이마는 나이 든 댕기동자를 연상케 했다. 과장을 살짝 보태면 쪽진 할머니 같기도 하다. 게다가 어두운 밤에 비몽사몽 기저귀를 갈다가 긴 머리카락이 아기 엉덩이로 말려 들어간 일도 있었다. 아침에 기저귀 속 긴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아기가 밤새 보챘던 게 엉덩이가 간지러워서 그랬나 싶어 어찌나 미안하던지. 안 되겠다.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를 자르기라도 해야겠다. 


 드디어 남편이 쉬는 주말,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기를 맡을 남편을 동반하여 미용실로 향했다. 꽤 오래전부터 내 머리를 담당해 온 헤어 디자이너가 반갑게 맞아준다. 나보다 젊은 남자인데, 자신의 실력에 매우 자신감이 있고 실제로 커트를 꽤 잘한다. 머리를 하는 동안 어색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신상을 이것저것 묻지 않는 점도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내가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한 헤어 스타일을 설명하지 못해도 알아서 머리를 해주는 점이다. 이를테면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지적인 스타일이면 좋겠어요."라는 막연한 요청에도 그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결과물을 내주었다. 남편의 머리도 그랬다. 결혼 전 그의 중학생 같은 모범생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떻게 바꿔줘야 할지도 딱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을 이 헤어 디자이너에게 데리고 와서 “좀 바꿔주세요. 너무 짧거나 길게는 말고요.”라고만 했는데도 과하지 않은 세련된 헤어스타일로 나와 남편을 모두 만족시켰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남편도 직장에서 헤어스타일에 대한 칭찬을 몇 번 듣고 나서는 군말 없이 그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다. 

  

 그는 여전히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알았다. ‘꾸밀 시간이 없으니 묶기만 해도 예쁜 긴 단발로’ 잘라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두말 않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거침없이 가위를 철컥댄다. 10센티, 아니 족히 20센티는 되어 보이는 머리카락들이 잘려 나갔다. 내 머리가 저렇게 길어졌던가? 반곱슬의 머리카락 뭉텅이들이 둥글게 말려 바닥에 오륜 무늬를 이룬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에 내 세월이 압축되어 있는 양 아쉬운 마음이 든다. 


 최근 더 바빠졌다는 헤어 디자이너는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안부도 묻지 않고 번개같이 가위질만 했다. 하지만 내게 이러저러하게 커트하고 있다고 굳이 생색내지 않아도 내가 요구하지도 않은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맞춤 커트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숱이 적어진 것을 보완하기 위해 속 머리에 숱을 치고, 비어있는 옆 이마는 그 옆의 머리를 짧게 잘라 채워 넣었다. 정리되지 않은 눈썹 주변도 살짝 깎아주었다. 내 보기에는 진작 커트가 다 된 것 같았지만 그는 ‘조금만 더’라고 중얼거리며 몇 번의 가위질을 더한 후에야 가위를 내려놓았다. 방망이 깎는 노인이 바로 여기 있었다. 


 드라이까지 멋지게 해주고 나니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수개월 만에 목욕을 한 기분이다. 머리 무게가 이렇게 가벼워지다니. 그동안 더운 날씨에 참 무거운 머리카락을 다 이고 다녔구나. 앞머리를 만드니 주름진 이마가 가려져 한결 어려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기를 목욕시키기 위해 다시 머리를 질끈 묶어야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10분의 여정은 꼭 아가씨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난 저 표현을 참 싫어하는데. ‘아가씨로 돌아간 기분’이라니! 하지만 내 기분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표현을 찾지 못해 분하다.) 


 물론 다음날 머리를 감고 드라이의 마법에서 풀려봐야 새 헤어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드는지 알 수 있을 거다. 그렇다 해도 그 순간, ‘출산하고 엉망인 외모에서 당분간 벗어날 수 없어’라는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데에 해방감을 느꼈다. 숱이 적어진 머리를 풍성하게 만들고, 휑한 이마도 채워 넣을 방법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육아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생각을 가르는 헤어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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