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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Dec 11. 2019

단유를 앞두고

육아와 사색_25 맥주 없는 치킨은 이제 없다

 단유 시점이 정해졌다. 근무를 시작하면 낮수는 못하게 된다. 출근 일주일 전부터 낮수를 아예 중단해보았는데 가슴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아침에만 먹이고 있는데, 그나마도 양이 많지 않아 2시간 후에 이유식을 먹인다. 근무 나가기 전에 젖이 완전히 끊길지도 모르겠다.      


 한창 모유 수유에 몰입해 있던, 그러니까 아기 먹이는 일에 온 신경이 가 있던 시기에는 단유할 생각만 해도 벌써 아쉬웠다. 생명줄인 양 내 가슴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젖을 빠는 아기새 같은 모습을 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생각보다 단유의 결정은 덤덤하게 찾아왔다. 일단 10kg에 육박하고 있는 9개월 보석이는 더 이상 얌전히 누워 내 젖꼭지만 바라보는 가녀린 아기새의 모습이 아니다. 어찌나 발버둥을 치며 먹는지 젖을 먹는 동안 손톱을 깎아주고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는 건 옛일이 된 지 오래다. 젖양이 많지 않은 가슴이라 그런지 젖 줄기가 약해진다 싶으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고 분유를 달라고 칭얼대거나 수유 쿠션을 탈출한다.      


 보석이와 월령이 같은 이웃집 아기의 엄마는 6개월 차에 단유를 했는데, 그 집 아기 아빠가 단유하길 잘 하지 않았냐고, 이렇게 큰 애 젖을 먹인다고 생각하면 징그럽지 않냐고 묻는단다. 알 거 다 아는(?) 나이가 아니냐고 말이다.      


 8, 9개월 아기를 두고 큰 애라는 둥, 알 거 다 아는 나이라는 둥 하는 게 웃기지만 공감도 된다. 생존을 위한 것 외에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체형도 3등신을 벗어나니 어떤 때는 아기가 아니라 어린이를 상대하는 기분이 든다. 이유식을 시작한 이후로 모유 수유에 대한 목가적 환상은 더욱 희미해졌다. 소고기야채 죽을 먹고 디저트인 양 내 젖꼭지를 냠냠 빨면 기분이 묘하다. 내 가슴도 양치를 해야 하나.      


 부담스럽게 커졌던 가슴도 작아지고 있다. 아직 변화 중이어서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가슴이 임신 전의 제자리로 완전히 올라붙지는 못할 것 같다. 현재의 가슴은 출산 직후 바람 빠진 풍선 같던 배와 비슷하다. 출산하고 나면 가슴이 더 작아질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원래도 그리 크지 않은 가슴이었는데 좀 더 작아질 수도 있고, 헐렁하게 처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영 흐물거릴 것만 같던 뱃가죽에 조금씩 탄력이 생기는 걸 보면 가슴 사정도 조금씩 나아질지 모른다.      


 아, 단유를 하면 맥주와 커피를 맘껏 마실 수 있는 건가. 냉장고 안쪽 두 캔의 맥주가 차가운 숨을 내쉬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거의 2년 만의 알코올이다. 안주가 고민된다. 맥주 없는 치킨은 이제 끝이다. 커피는 다시 마실 건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매일 필수로 마시게 되니 이참에 완전히 끊는 것도 나쁘지 않다.     


Photo by Engin Akyurt from Pexels


 이렇게 내 마음은 자연스레 단유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있다. 모유 수유 안 하면 큰일이 나는 듯 열성을 다하던 시기가 어느덧 끝나고, 하루 세 번 이유식으로 세상의 맛있는 음식에 경이를 표하고 있는 보석이를 위해 균형 잡힌 식단을 마련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게 될 것이다.     

 

 이제 마지막 수유가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른다. 아침에 엉금엉금 기어 자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가 물어보니 먹을 게 나오지 않는다고 고개를 픽 돌리면 그냥 모유 수유가 끝나는 것이다. '단유를 앞두고'라는 제목을 달며 애잔한 글을 쓰리라고 예상했는데 쓰다 보니 너무 덤덤하다. 맘카페에서 단유가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힘들다는 글을 많이 읽었지만, 나의 단유는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역시, 쓸데없이 훗날의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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