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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Mar 02. 2019

임산부의 배

임신과 사색_ 5

이제 펑퍼짐한 옷을 입어도 나온 배가 감춰지지 않는다. 임신 전에 비해 6kg 이상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흔히 표현하듯 ‘몸이 무겁’지는 않다. 다만 조심스러울 뿐이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본능적으로 보폭을 작게 하여 조심조심 걷는 폼이 영락없는 임산부 걸음이다.     


임산부로 보이는 것은 임산부가 되는 것과는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이전에는 모이지 않았던 타인의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부른 배를 내밀고 조심조심 걷는 임산부의 포즈는 배려받아 마땅한 약자임을 드러내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내가 약한 상태이며 더 약한 존재를 품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노출하자니 괜한 두려움도 든다. 임산부 폭행 같은 잔혹한 이야기가 떠올라 낯선 사람을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날렵한 젊은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을 때는 밤길이나 낯선 길에서의 두려움이 크지는 않았다. 위험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안전한 곳으로 달려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무의식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격도 가능하지 않을까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 신체가 둔해졌을 뿐만 아니라 뱃속에 있는 아주 연약한 존재를 보호하기 위해 무슨 일이 있으면 배부터 감싸야하는 불리한 입장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산부의 또 다른 고민은 아기를 가졌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배를 만지려는 타인의 제스처다. 주로 친척들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고 해도 평소 서로의 배를 만지며 안부를 묻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오랜만에 뵙는 시 할머님이 만나자마자 대뜸 나의 배에 손을 대기에 조금 놀란 적이 있다. 아주 나이가 많은 노인들은 다소 선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더라도 으레 그러려니 하게 되는 법이라 불쾌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에 증손주를 본다는 감격과 희열이 번지고 있어 그녀의 본능적인 손 내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신한 여성의 배는 그녀 소유의 신체 부위라기보다 이미 현현한 모두의 손주처럼 여겨져 불쑥 만짐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만삭이 되면 몸을 구부리지도 못해 남편이 양말을 신겨줘야 한단다. 신기한 경험이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팔뚝만 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배는 홀쭉해진다. 10개월에 걸쳐 점점 커진 배가 어느 날 갑자기 텅 비는 것이다. 어떤 느낌일까. 캥거루 주머니처럼 헐거워질까.


부지런히 튼살 오일을 바르며 어미 캥거루의 것과 같은 배를 어루만진다. 여러 종류의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준 아이에게 부지런히 감사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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