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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Jun 15. 2020

만나러 여행 갑니다

아이처럼 행복하라

풍경보다 사람 


여행하고 있을 때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일출과 일몰, 산과 바다, 평원과 나무, 하늘과 구름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남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사진을 보고 그때 만난 사람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웅장한 산이나 광활한 평원보다 사람이 더 크게 기억됩니다. 

다시 그곳에 가게 되는 것도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서입니다. 


알렉스 김 《아이처럼 행복하라》 




프랑스 파리 에펠 타워



제법 이웃으로 가깝게 지내던 분께서 제가 여행을 좋아하고 실제로 많은 곳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하루는 저에게 물어보셨습니다. 


"에펠탑 같은 유명 관광지는 사진으로 볼 수 있는데, 왜 직접 가서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때는 저도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에펠탑은 파리 샤요궁(Paris de Chaillot)에서 찍은 사진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야간에 찍은 사진, 유람선에서 찍은 사진, 겨울에 찍은 사진, 맑은 날 찍은 사진 같이 파리에 직접 찾아가서 보기 힘든 모습들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해외로 여행을 가면서 김이나, 김치, (볶음) 고추장 같은 매직템들을 챙겨 가시는 분들도 많았고,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거나 한인 식당을 찾는 경우도 제법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커피 한잔 정도는 쉽게 마실 수 있고, 분위기 있고 맛 좋은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여행 가는 만큼 돈을 쓰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여행 간 것만큼 즐거울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면 다녀올수록 여행을 가는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바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딱히 유명한 나라나 관광지를 많이 다녀오지 않는 저로서는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만한 한두 곳을 대고 말을 아낍니다. 무엇을 보았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를 물어본다면, 하루 종일 신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말이죠.

 

저는 주로 혼자 여행을 다녔습니다. 둘은 너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혼자 여행을 가서 가장 좋은 점은 수많은 친구들을 길에서 사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정보를 공유하면서 같은 한국 사람이라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제법 다른 이유로 세계 각국 출신 사람들과 친구가 됩니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람을 만납니다. 대중교통이 아니고서야 차를 빌릴 때는 한 차를 가득 채울 수 있는 3명 혹은 4명이 좋습니다. 한 차에 탈 수 있는 사람 수를 맞추면 같은 거리를 싸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투어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한꺼번에 투어를 신청하는 게 가격을 흥정하기에도 더욱 유리합니다. 그렇게 차 안에서 몇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하고, 며칠을 같이 여행하면서 친구가 되어갑니다. 혼행족은 늘 외로우니까요.


가끔은 현지 사람들과 친구가 됩니다. 외지인들에게 유독 호기심을 갖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재미있고 친절합니다. 가끔은 호객행위를 목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까워지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딱 봐도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자신들이 늘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제법 괜찮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국수 한 그릇에 마음을 열어 보이는 일은 제법 자주 일어납니다. 사탕 하나로 아이들과 친구 됩니다. 달콤한 유혹은 그들의 마음을 열기에 충분하고, 그들은 언제나 마음을 열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합니다.




네팔에서 만난 작은 친구들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공원에서 한국 전쟁에 참여했다고 한참을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소통이 전혀 되지 않아 진땀을 뺐던 스님, 기차역에서 돈을 빌려 갔다가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 점심을 같이 먹었던 배낭족, 너무 친하게 웃고 떠들어서 부부 사이로 오해한 매표소 아가씨까지 저에게 가장 여행지의 큰 매력은 사람입니다.


이제는 여행을 왜 떠나냐고 물어보면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다른 목적으로 갈 때도 있지만, 저에게 여행은 낯선 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닮은 점을 발견하고 웃고 떠들고 기억하기 위해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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