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일상생활에서 가끔 말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알맞은 단어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도, 2%가 부족하다. 가끔은 외국어를 차용하기도 한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말하고 싶은 날이 있는가 하면, 멜랑꼴리melancholy하다는 단어가 딱 떨어지는 날이 있다. 한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듯, 언어로 적절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느껴지는 감정에 최대한 알맞은 단어를 골라 말을 하지만, 가끔은 정해진 대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마치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몇 안 되는 감정선으로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잡 미묘한 변화를 규정짓는다. 그 단순화가 충분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도, 틀에 짜인 대로 인식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때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은 나타내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감정은 감동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묘사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시도나 마찬가지였으리라.
니콜 크라우스 《사랑의 역사》
사실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타인에게 알리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은 그저 자기 나름대로 추측해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정확할 리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분이 상쾌하다고 말하면 듣는 이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까? 여름 문턱에서 시원한 사이다 한 잔 마셨거니 할지도 모른다. 요즘 일이 있어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별것도 아닌 일로 치기 어린 불평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리고는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면서 옳은 말만 끊임없이 꺼내어 놓는다. 같은 시련을 겪어도 그 힘겨움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두 자기 같은 줄 알고 말을 한다. 감기처럼 며칠 앓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이 절망스럽게 시간을 버티는 사람도 있다. 감정 없이 말만 전달된 결과 공감보다는 나약함으로 비친다.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받는다고, 그(녀)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나는 제대로 알 수나 있을까? 몇 마디 안 되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망설인 날들은 모두 감안하더라도, 망설이며 전한 감정은 충분히 설명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다. 그저 짧은 단어들에 녹아들어가 내가 알아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드라마 「연예의 체질」에서 가슴이 폴짝폴짝 뛰지 않는다며 드라마 제작을 거부하는 장면을 기억한다. 듣는 이는 가슴이 어떻게 폴짝폴짝 뛰냐고 대꾸한다. 가슴은 반드시 콩닥콩닥 뛰어야 한다는 규칙이 없듯 정해진 대로 느껴지는 감정은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를 머릿속으로 찾고 골라 최대한 비슷하게 설명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감정은 칼로 자르듯 잘리지 않기에 그 정도는 항상 부족하고 때론 넘친다. 자주 간과되고, 가끔은 잘못 전달한다. 그렇기에 감정을 들을 때는 최대한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렇게 들어도 여전히 정확하게 알아차리기에는 부족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