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is libris Jun 22. 2020

깊이 있는 사유는 항상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일까


햄릿은 문제가 생겼기에 그렇게 생각이 많았는가? 아니면 생각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생겼는가?
지성인들은 햄릿의 생각이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 문제에서 생각이 비롯되었다고 대답할 터이다.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책이라는 맹신 - ‘생각이 모든 것을 위로한다.’는 샹포르의 금언에 대한 믿음 - 을 드러내는 주장이다. 한편 자연주의자라면, 생각은 문제를 해결할 방책인 체 하지만 실은 그것이 바로 문제를 일으키는 질병이라고 볼 터이다. 생각은 심리적인 우울증의 한 형태였다 - 햄릿은 고통스럽다고 생각했을 때 비로소 고통을 느꼈다. 자연주의자라면 그에게 정신 활동을 극소화해야만, 이성이 망가뜨린 자연스런 단순함과 편안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충고할 터였다. 


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생각이 많아 힘들다는 사람들을 보면 온갖 심각한 숙제를 떠안은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피곤한 모습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낼 궁리를 한다.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모든 것을 off 하고 한적한 곳으로 피신을 떠나는 극단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많은 문제를 떠안고 있다.


이미 떠안고 있는 문제들도 고민하기에 벅차다 보니 생각 자체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둥글둥글함을 지향하고, 대충대충을 모방한다. 생각이 많다는 것과 까탈스럽다는 말은 분명 다름에도 너무 자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지나치게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피곤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 대충 하면 안 돼?"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래. 왜 이렇게 각졌어? 좀 둥글둥글해져 봐."


시키는 대로만 하는 지금이 좋은 거라며 생각하지 않는 편안함을 예찬한다. 문제를 제기하길 포기하고, 옳고 그른 감각을 잃어버린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음이 야기하는 '악의 평범성'을 논했지만, 아직도 그 나태함과 무지함을 좋은 시절이라 추억하는 듯 들린다. 너무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히려 괴로웠던 적도 있었다. 몰랐으면 하는, 이미 알게 되어 버린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적잖게 힘들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넘어가는 요령을 부리기도 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려면 반드시 정신활동을 극소화하는 자연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사유를 즐기는 지성인의 평온함은 풍요롭다.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찰 끝에 얻어지는 평화로움은 아프지만, 가치 있고,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고, 목소리의 그 반대 입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렇게 문제의 합일점을 찾아가는 것이 곪을 대로 곪은 다음에 해결하려고 들여다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사유의 결과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 단순함이 문제를 풀어가는 첫머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치료해 주는 상처란 없다. 문제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놔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누구나 치열하게 문제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외면과 묵인의 편안함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한다. 몰랐으면 좋았을 걸 보다는 알아서 아프지만 다행이다가 되면 좋겠다. 상처 받기 두려워 매사 방어적이 되는 것보다 실컷 아파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 무모함이 필요하다. 다 알지만 좋게 좋게 넘어가는 대신, 한 번쯤은 아니라고 정중하게 말해보는 용기도 괜찮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언어로는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