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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Jul 02. 2020

부시맨과 콜라병

어플루엔자

과잉 소비를 경계하는 책을 읽으면서 〈부시맨The God Must Be Crazy〉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책에서도 몇 번 등장하는 영화는 1980년에 개봉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인들을 풍자한 영화다. 아주 어렸을 때 하늘에서 콜라병이 떨어지는 장면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광고의 한 장면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첫 부시맨 영화는 아프리카 사막을 배경으로 한다. 칼라하리 사막에서 살아가던 부시맨족 마을에 어느 날 비행기 조종사가 아프리카 대륙을 날아가다 비행기 밖으로 버린 빈 콜라병이 부시맨들이 사는 마을에 떨어진다. 난생처음 보는 물건에 부시맨들은 콜라병을 신의 선물로 생각한다. 콜라병은 생활에 유용했고 편리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콜라병을 차지하기 위해 부족원들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주인공 부시맨족 자이는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는 콜라병을 세상의 끝으로 가져가 버리기로 결정한다. 세상 끝으로 가져가 콜라병을 버리는 여정에서 부시맨은 백인 동물학자와 여기자를 만나고, 반란군과 정부군의 갈등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소동에 관한 내용이다.


영화 속 부시맨 자이는 순수한 눈으로 문명사회를 바라본다. 영화는 주인공 자이의 눈에 비친 문명사회의 가치관을 풍자하고 문명화된 삶을 해학적으로 바라본다. 영화에 등장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도 재미있지만 영화 속 순수하고 엉뚱한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포스터 The Gods Must be Crazy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의 작품들을 자주 접한다. 멸망한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절망적이다. 혼란한 분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하기도 하지만, 달라진 세상이 두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내가 누리고 있던 다양한 문명 혜택과 편리함이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쉽게, 그리고 풍족하게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모든 것이 부족한 사회로 다시 회귀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울함과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우리 외부에서 인정을 구하느라고 

우리가 아는 것이나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 큰 소리로 떠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 

우리가 가진 것을 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가 된다. 


존 더 그라프 《어플루엔자》 




매일 필요한 물품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싶은 물건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내일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소비하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다 보니, 돈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스스로 직접 만들거나 해결하는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직접 하지 않아서 편리하다고 느껴야 하는 자리에 직접 해야 하니 불편하다는 감정이 자리 잡은 것이다.


예전에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누릴 수 없었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편리함을 인지하고 편리함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이런 조언은 유행이 지나가 버린 낡은 옷처럼 관심을 주지 않는다. 문명의 혜택이라는 단어도 아주 낯설고 진부하게 느껴진다. 이미 편리함과 넘치는 소비는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삶을 고민한다.


앞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얼마나 왔는지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다. 부시맨의 눈으로 문명을 바라보듯, 익숙해진 편리함을 돌아보는 것이다.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낭비하지 않고, 불편함에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더 편리한 것이 유익하고, 더 많으면 유리하다는 가치관은 사회를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더 치열하게 경쟁하게 만들었다.


부시맨에게 콜라병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신의 선물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끝에서 버려버려야 하는 편리함이었을까? 처음 부족원들은 작은 콜라병 하나를 제법 유용하게 사용한다. 음식재료를 다듬는데도 사용하고, 딱딱한 과일 껍질을 뚫는데도 유용하다. 하지만 작은 콜라병의 편리함에 취해 서로 작은 콜라병 하나를 소유하기 위해 경쟁하고 갈등한다. 우리도 다른 이가 보이게는 비싼 콜라병을 소유하기 위해 매일 갈등하고 경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부시맨 부족의 갈등 앞에서 예전에 들었던 충고를 다시 떠올린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원하고,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돌아보라. 소비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소비 때문에 괴로워하지는 말자. 지금까지 콜라병 없이도 잘 지내왔는데, 그깟 콜라병이 대수라고 서로 얼굴 붉히거나 미워하는 것도 우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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