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초등학생 시절 소풍을 다녀와 혼자 집에 있는데 무척이나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 종일 시끌벅적하게 친구들과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분위기는 무척이나 적막하고 조용했다. 그 적막함 속에서, ‘오늘같이 즐거운 시간은 다시 보낼 수 없을 거야.’ 하며 울면서 숙제로 일기를 썼다.
나는 무슨 거장이 되겠다고, 그 즐거움 속에서 슬픔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신나는 일들로 일기를 채웠는데, 제법 우울한 톤의 내 일기를 읽어보신 담임선생님께서는 빨간 색연필로 몇 문장을 남기셨다.
‘즐거운 주말을 보냈네요. 슬퍼하지 말아요. 더 즐거운 일이 많을 거예요.’
물론 그 뒤로도 소풍보다 즐겁고 신나는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을 수도 없이 보냈다. 화려한 순간들 뒤에 따라오는 허무함도 있었지만, 그때처럼 슬프거나 울만큼 적적하지 않다. 그 순간 중에는 큰 영광이고, 아름다운 시절 속의 풋풋한 기억들도 많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지만 그 아름다움이 슬프지만은 않다.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그대로 아름답게만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어리석은가.
거장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관에 따라 아름답게 재창조하기도 하고 추한 것에 욕지기를 느끼면서도 호기심을 감추지 않고 표현하는 기쁨에 젖습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인간 실격이라는 제법 묵직한 제목의 책을 손에 드니 생각이 많아진다. 사고를 위한 책이 따로 있는 아니지만, 책에 밑줄을 긋고 메모를 수두룩하게 남기게 된다. 아름다움에 관한 짧은 문장도 마찬가지다. 왜 예전 초등학생 시절 기억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밑줄에 다하지 못한 생각들이 따라붙는다.
예전 같았으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그대로 아름답게만 느끼고 즐기는 단순함을 선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라도 되는 양, 지나치게 원초적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기쁜 순간 속에서 너무 호들갑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낙심하지 않으려고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 노력했다. 마치 뜨거운 물에 미지근한 물을 섞는 기분이었다. 차가워진 물에 미지근한 물을 섞듯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다. 아름다운 것들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즐기는 연습을 한다. 일어나는 감정 있는 그대로를 즐기는 것도 요즘에는 무척이나 신나는 일다. 아름다운 그대로에 기뻐하고 예찬하는 것이 어리석다면 조금 어리석어도 괜찮을 듯싶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