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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Jul 17. 2020

슬프지만 너무 소중한 것과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포르토벨로의 마녀

예전에 종종 함께 술을 마시던 친구들을 찾아보았는데, 대부분 떠나고 없더구나. 남아 있는 이들도 끊임없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며 투덜대고, 즐겨 다니던 곳을 따라 걸어보았지만 난 이미 이방인이었다. 이젠 내가 베이루트의 어떤 것에도 속하지 못한 다른 느낌이 들었어. 가장 안 좋은 건 그거였다. 되살아나던 옛 꿈들이 내가 태어난 도시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은 순간 사라져 버렸다는 것. 바로 그래서 내가 거길 찾아가야 했던 거다. 아직도 내 가슴속에는 추방당한 자의 노래가 남아 있지만, 이제 나는 내가 절대로 다시 레바논으로 돌아가서 살 수 없으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에 베이루트를 다녀온 덕분에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이곳 런던에서 보내는 매 순간의 가치를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 거야. 


파울로 코엘료 《포르토벨로의 마녀》 




아이러브스쿨


한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웹사이트가 유행했다. 초중고 입학과 졸업 연도를 입력하면 같은 시기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창생들을 검색할 수 있었다. 웹사이트를 처음 접했을 때 학연과 지연을 포함해서 인연을 중시하는 정서에 딱 맞는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나도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언제, 어느 초등학교에 다녔고, 언제 전학을 갔고, 언제 졸업했는지를 입력했다. 모두 학창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는 친구들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한다. 풋풋하고 그립고 즐거웠던.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가 막힌 서비스에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서 사람들은 그 시절 추억을 되살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 했다. 그렇게 추억 속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몇십 년 동안 끊어졌던 인연들과 다시 연락을 주고받고, 삼삼오오 모여 작게 동창회가 열리곤 했다. 일주일에 동창회가 세 개나 잡힌 적도 있었다. 초중고가 아니라, 동네 친구들, 중고등학교 때 입시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 2학년 6반을 다니다가 전학 가버린 친구와 함께였다. 그중에는 나처럼 짝사랑하던 소녀를 찾는 이들도 당연히 있었다. 어떻게 해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 한때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기억 그이를 현실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녀가 다니던 학교를 클릭하고, 이름을 검색해서 그녀를 찾아냈다. '혹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을 안고 쪽지를 남겼다. '안녕, 오랜만이야. 나 혹시 기억해?'라고 시작하는 담백하고 짧은 문장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답장이 도착했다. 기억 속 그녀를 다시 소환할 기회가 찾아왔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언제 어디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점심이나 한 끼 먹고 커피나 한잔 마시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얘기나 나누자고 했다. 막상 만나기로 하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고심해서 준비해 간 질문들이 고작 '연락이 끊어진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디서 사는지?' 같은 것들이었다. 약속한 날까지 기다리는 며칠은 너무 느리게 지나갔다. 기다려지는 기대가 큰 만큼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추억과 조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설레었다. 추억이 현실이 되는 순간에도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기억 속 소녀가 아니라 나와 같은 또래의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억하는 모습이 제법 남아있었지만, 역시 기억하는 그녀가 아니었다. 예전처럼 풋풋한 공기가 오가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을 사는 현대인 두 명이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는 사라지고 오늘만 남은 듯했다. 그녀에게 예전에 있었던 일화를 몇 개 이야기하며 어색하게 웃고, 함께 알고 지내던 다른 친구들 소식을 한껏 늘어놓고, 그녀가 겪고 있는 불합리와 어려움에 서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나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추억과 만났던 것일까? 만찢녀처럼 추억을 찢고 나와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추억이라는 필름을 씌운 빛바랜 희망이 그릇된 기대와 착각을 만들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언가 특별하고, 편안하고, 과거의 추억이 다시 되살아날 것 같은 기적을 바라고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실망하는 꼴이 우스워 보였다.


내 나라의 옛날이라 하더라도 옛날은 외국이나 다름없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의 한 문구처럼 아무리 익숙하더라도 지나가 버린 것들은 외국 것이나 다름없다. 기억하는 과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살아보고 싶어도 경험할 수 없는 시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낯선 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현실로 끄집어내는 시도 자체가 무모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욱이 그 기나긴 시간을 뛰어넘어 친근하고, 익숙할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는 희망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과 같은 수준의 바람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동창회에서 만난 그 녀석들도 더 이상 기억하는 그 녀석들은 아니었다. 서로가 공유하는 시절이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오랜 시간의 벽은 제법 크다. 더는 생각 없이 야자를 땡땡이치고 놀러 다니던 그때 그 기준으로 녀석들을 대할 수 없어져 버렸다. 아직 변변한 상황이 아닌 녀석들은 얼굴을 보여주기를 꺼렸다. 그 녀석들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변한 자신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오늘과는 연락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 버린 것이다.






슬프지만 너무 소중한 것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몇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추억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 환상은 깨어지고 추억에는 얼룩이 남는다. 과거는 추억할 때 가장 아련하고 그립다. 그리워하는 순간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한동안 아이러브스쿨에 빠져 지내다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기억 속 감사한, 그리운, 좋아하는 누군가를 다시 들추는 일이 생각만큼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흠집을 내기에 추억은 내게 너무나 소중했다. 얼마 전 아이러브스쿨도 싸이월드와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름다운 기억들은 되살리지 말자'는 깨달음을 남기고 추억이 되어버렸다. 추억은 그냥 그리운 채로, 아쉬운 채로, 조금은 아련한 채로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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