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책을 반드시 마지막장까지 모두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권은 반드시 완독을 하고 말겠다 다짐하는 책들이 있다. 때마다 유독 안 읽히던 어려웠던 책이 있는데, 얇은 데미안이 그랬고, 두꺼운 안나 카레니나, 대서사의 토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가 미제 사건처럼 풀어야 하는 과제 같은 책이었다. 뒤늦게 완파를 한 책들도 있고, 반 정도 읽다가 다시 포기한 책들도 있다. 다시 읽기 시작하겠지만, 끝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느 등반가가 산이 허락해주었기 때문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책이 허락을 해줘야 마지막 장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같은 책을 읽어도 술술 잘 읽어 내려갈 때가 있고,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때가 있다. 물론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 책과 잘 맞지 않아서겠지만, 나는 그걸 에둘러 책이 나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핑계를 대고 책을 과감하게 덮어버린다.
코스모스가 한동안 그랬다. 과학이라면 제법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는 편인데, 유독 코스모스는 지루했다. 몇 번 그 재미를 느끼기 위해 시도했지만, 코스모스는 허락해주지 않았다. 이번에서야 간신히 속력을 내서 읽어 내려가고 있다. 하루에 한 개 꼭지씩 13일에 나눠서 읽자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중이다. 여러 번 같은 내용을 읽은 탓에 익숙한 내용도 있고, '이런 내용이 있었나?’ 하는 부분도 있지만, 뉴턴의 이 구절은 보면 볼수록 즐겁다. 영혼을 작지만, 미지의 혜성에 비유한 표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들린다.
뉴턴은 신비로운 몽상 속에서 이렇게 썼다. “한발 더 나아가 나의 소견을 말할 것 같으면 인간의 영혼도 따지고 보면 주로 혜성에서 왔다. 영혼은 우리의 숨결 중에 지극히 적은 부분이지만 가장 미묘하고 유용한 요체이다. 우리 가운데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영혼이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우리의 영혼이 혜성에서 왔다면 여행을 동경하고,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면 자신을 태워 긴 꼬리를 만들어 흔적을 남기는 것도 너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혜성은 일명 찌그러진 타원 모양으로 공전을 한다. 주기적이기는 하지만 제법 긴 거리를 지속해서 여행한다. 태양 주변을 돌지만 여정에서 수성, 금성, 목성, 토성, 지구와 같은 행성들을 만난다. 행성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행성의 중력 때문에 혜성은 공전 궤도를 가까이 있는 행성 쪽으로 찌그러뜨린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혜성이 무거운 행성 쪽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에 있는 행성에 영향을 받아 잠깐 자신의 공전 궤도에서 이탈(?)한다. 가끔은 혜성 일부가 떨어져 나가 행성에 부딪혀 상처를 남길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풍화작용으로 상처가 희미해지지만, 대기가 없는 행성은 아주 오래도록 상처가 표현에 남아있게 된다. 혜성이 태양 가까이에 오면 자신을 태우기 시작한다. 이때 혜성의 진행 방향 반대쪽으로 긴 꼬리를 만들면서 나는 태양 근처를 지나는 중이라는 표시를 남긴다.
혜성은 고작 기체와 얼음덩어리일 뿐이지만, 자유로운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전통적으로 망조와 흉조를 대표하는 표징이었지만 그 신비함은 영혼에 빗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