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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Jul 28. 2020

바쁘게 흘러가 버린 시간이 더 아깝다

코스모스

아주 오래전 내가 살던 동네는 길거리에서 하루살이를 자주 볼 수 있을 만큼 시골이었다. 장마가 지고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길 한복판에서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를 피해 다녀야만 했다. 하루살이가 날아다니는 길을 지날 때는 발걸음을 유독 빨라졌는데, 하루살이가 날아다니는 그곳을 재빨리 벗어나려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했다. 발걸음이 느리면 뒤통수 뒤로 하루살이 떼가 집까지 따라올 기세로 따라오곤 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하루살이 한 무리가 길 가운데에서 길을 가로막고는 동그란 모양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꿀벌은 8자 비행 같은 방법으로 다른 벌들과 소통을 한다는데, 하루살이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면 하루가 거의 끝나가니 수명이 다할 때를 기다리는 것인지 같은 자리를 끊임없이 날고 있었다. 재빨리 지나가려고 걸음에 속도를 붙이는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귀가하는 하루가 헛헛하게 느껴졌다.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에게는 한평생을 의미 없이 흘려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보낸 하루였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없었다. 땡땡이를 쳤다는 사실이 속상하진 않았다.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냈다는 사실이 슬펐다.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별, 행성과 같은 세계 도한 우리 인간들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 죽어서 사라진다. 인간 수명이 수십 년 정도인 데 비하여, 태양의 수명은 인간의 수억 배나 된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 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별과 비교한다면 너무나 하찮고 빈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대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다른 기준에서 보면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안 된다는 사실은 거의 다 떨어져 갈 때까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거의 다 써버리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닫는다.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멋진 문장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다음 달이 있고, 내년이 있다는 사실에 어제와 똑같은 의미 없는 오늘을 보낸다. 


의미 있는 하루는 바쁜 하루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생활했지만, 기억하는 바쁜 하루를 많지 않다. 정확히 한 달 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듯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보다는 오히려 관성에 따라 당연한 일들에 써버린 시간을 아까워 해야 한다. 게으름을 피우면서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휴대폰을 보면서 써버린 하루 보다는 왜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게 지나간 하루를 돌아봐야 한다. 최소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가 버린 시간이 있으니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공백이 생겼고, 온종일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기에 어딘가에 쏟을 열정을 품을 수 있었지 않은가? 의미 없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는 '지친다', '힘들다', '어렵다'는 감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바쁘고 힘들거면 차라리 게으른 하루를 보내는게 낫다. 아무것도 안 한 시간보다 바쁘게 흘러가 버린 시간이 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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