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is libris Aug 10. 2020

빼앗은 줄 모르고 정당하게 노력한 결과라고 믿었다

파리의 우울

어릴 적 〈아기 공룡 둘리〉라는 만화 영화에 우주여행 도중에 보석으로 이루어진 별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둘리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주선에서 뛰어내려 '내 것'이라는 표시로 행성에 금을 긋기 시작한다. 행성 전체를 돌며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다가 조금 더 넓은 땅을 차지하겠다고, 즉 조금 더 많은 보석을 갖겠다고 서로 치고받고 싸운다. 한참을 정신없이 싸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보석으로 가득했던 별은 이미 사라져 버리고 없다. 싸우는 동안 우주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이좋게 보석을 나눠 가졌더라면 부자가 되었을 텐데…’하며 아쉬웠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서 같이 TV를 보고 있는 동생과 앞으로는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하루도 되지 않아 또 동생과 싸우게 됐지만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겠다' 다짐했던 그 순간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기억 중에 하나로 남아 있다.



〈아기 공룡 둘리〉 사라진 보석이 가득한 별



그 후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이좋게'라는 수식어에 대한 무게감을 느끼지 못했다. 글자로만 알고 있던 단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경쟁해야 했고, 노력해야 했고, 앞서 나가야 했고, 좋은 것을 차지해야 했다. 당연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손에 넣고 싶어 하는 욕구는 당연하다고 배웠고, 또 그렇게 경쟁했다. '차지했다'라고 말하기 전에 '정당한 노력의 결과'라고 믿었다. 그러는 동안 충분히 가졌음에도 욕심낸다고 미워하고, 피해 보지 않겠다고 다투고, 이해할 수 없다며 서로를 비판하기에 바빴다. 노력에 대한 대가가 커지면 커질수록 소중한 것을 앗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한 채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손에 쥔 빵 한 조각에 정당한 보상이라는 합리적 이유를 만들어 냈다. 내가 차지하면 누군가는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되었다. 누구의 관심도 아니었다.




나는 천천히 빵을 자르다가 아주 작은 어떤 소리가 들려 눈을 들었다. 내 앞에는 누더기를 걸친 시꺼멓고 머리가 헝클어진 꼬마가 하나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움푹 패고 사나워 보이면서도 애원하는 듯, 마치 빵 덩어리를 삼킬 듯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낮은 쉰 목소리로 과자!라는 말을 탄식처럼 내뱉은 소리를 들었다. 나는 거의 하얗다고 할 정도의 내 빵을 과자라는 명예로운 말로 불러주는 소년의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크게 한 조각을 잘라서 그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는 여전히 눈을 그의 탐욕의 대상인 빵에서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고는 빵 조각을 그의 손으로 가로채서는 재빨리 뒷걸음쳤다. 마치 내가 거짓으로 방을 주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내가 벌써 생각을 바꾸지 않았나 겁이라도 내고 있는 듯.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야만인 꼬마에 의해 그는 나둥그러졌다. 그는 처음의 꼬마와 너무 닮아서 쌍둥이 형제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들은 이 귀중한 먹이를 서로 빼앗으며 땅 위에서 구르고 있었다. 둘 중 누구도 쌍둥이 형제를 위해 빵의 반쪽을 희생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의 꼬마는 분통이 터져 상태의 머리털을 움켜쥐고, 두 번째 꼬마는 상대의 귀를 이로 물어뜯어서는 그 피가 나는 조그마한 살 조각을 희한한 사투리 욕설과 함께 내뱉었다. 과자의 정당한 소유자가 약탈자의 눈에 그의 작은 발톱을 박으려 하면, 약탈자는 손으로 적의 목을 비틀려고 있는 힘을 다하고,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는 애써 이 투쟁의 대가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패자는 절망으로부터 다시 기운을 차려 벌떡 일어나 승자의 배때기를 대가리로 들이받아 땅으로 굴러 떨어지게 한다.


어린아이들의 힘으로는 실로 있을 법하지도 않을 만큼 오랫동안 계속된 이 끔찍한 싸움을 더 묘사해서 무엇 하랴? 과자는 순간마다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바뀌었다. 그러나 저런! 그와 동시에 과자는 그 크기도 변해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기진맥진 숨이 차고 피투성이가 되어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어 싸움을 그쳤을 때는, 사실 말이지, 이미 싸울 아무런 건더기도 남지 않게 되었다. 빵 조각은 사라지고, 그들이 뒤집어쓴 모래알처럼 작은 가루가 되어, 모래 속에 섞여 흩어져 버렸다.


이 광경은 내 눈에 아름다운 경치마저 어둡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들 난쟁이를 만나기 전까지 내 마음의 만끽하던 고요한 환희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계속 이렇게 되뇌었다. “그러니까 빵이 과자라고 불리는 희한한 나라가 있구나. 그것이 그렇게 희귀한 사탕 과자랍시고 정말 형제끼리 서로 죽이는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니!”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그동안 빵을 빼앗으려는 아이가 되었다가, 또 빵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이가 되었다. 얼굴을 붉히며 학교 갈 때 우리 집 앞으로 다니지 말라고 심술을 부리기도 했고,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며 '형님, 아우'하는 사이가 되어 프로젝트를 따오기도 했고, 회의에 들어가 이 문제는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그럴싸한 이유를 들이대며 싸우기도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 손안에 쥔 거라고는 하찮은 것들 뿐이었다. 승자는 없었다. 빼앗기고 또 빼앗는 일이 반복될 뿐이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그 반복되는 갈등과 싸움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는 사실이었다. 빵은 땅 위에서 나뒹굴어 흙투성이가 되어 못 먹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싸움을 멈출 수가 없어 싸우기 위해 싸우는 지경이 되었다. 사이좋게 해결하면 될 것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누군가의 실수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고, 여지없이 빼앗으려 했고, 빼앗기지 않으려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돌아보기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순간 기나긴 여행을 준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감하게 떠나왔다.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빼앗길 일이 없을 거라는 희망이 함께 했다.


누군가 샤를 보들레르의 시 한 편을 자신의 인생의 시라고 소개한 영상을 보았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수록된「여행Le voyage」이라는 총 8편으로 구성된 연시이다. 시는 이렇게 끝맺는다.




VIII

아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시간이 됐습니다. 닻을 올리시오!

이 세상은 이제 지겨워요. 죽음이여! 채비를 하소서!

만약 하늘과 땅이 모두 잉크처럼 검다면

우리의 마음만큼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독약을 부어요.

우리는 원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이 불로 불타는 동안에

깊음 속으로 빠져들기를, 지옥이건 천국이건 무슨 상관입니까?

모르는 것의 심연에서 새로운 것만을 찾아낼 수 있다면.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여행Le voyage」




그토록 멀리하고 싶었던 그런 사람으로 물들어 간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더 이상 물들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망가져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노력, 들인 수많은 시간, 함께한 동료들, 익숙함과 안락함을 포기하고라도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떠나고 싶었다.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마음은 빛으로 가득 차 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월급 마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삶에 익숙해지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든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과 위험이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작은 건물 안에서 여행에 대한 환상에 빠져 다른 삶을 경외만 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매월 월급날만을 기다리며 그럴듯한 핑계로 지금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용기 없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한 번 떠나는 여행이다. 조금 서툴러도, 외롭거나 조금은 위태로워도 가장 나다운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믿는다. 길 위에서 또 읽고, 또 배운다. 길 위이기 때문에 한가히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Le voyage de Samy Bear


매거진의 이전글 피곤한 아침형 인간과 퇴근 후 한 시간, 그리고 N 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