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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Sep 18. 2020

지킬 것은 지키며 천천히 걸어갈 때

고독의 힘

집에서 학교까지 등교하는 가장 빠른 길은 높은 언덕을 넘는 길이었다. 길이 험하고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도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언덕을 돌아서 등하교를 했다. 직선거리로는 10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매일 같이 언덕을 돌아 30분을 걸었다.


하루를 늦잠을 자고 하는 수 없이 언덕길을 선택했다.

언덕을 오르려니 숨이 턱까지 찼고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바지가 찢어지고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다행히 수업에는 늦지 않았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나의 꼴은 이미 엉망이 되어있었다. 땀범벅이 되어 찢어진 바지를 입고 다리에는 피를 흘렸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는 시간 맞춰 양호실에서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를 받았다.



사람들은 흔히 지름길을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짧은 거리의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킬 것은 지키며 천천히 걸어갈 때  

오히려 목적지에 빨리 닿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원재훈 《고독의 힘》 



지름길은 대부분 힘들고 위험하고 좁고 거칠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삶에서조차 지름길을 찾는다. 

빨리 가기 위해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편할 것 같아서,

어차피 고생스럽다면 짧게 고생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지름길 길이 빠르면 빠를수록 그에 상응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거나,

빠른 만큼 힘들거나,

상처를 받거나,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길게 보면 지름길과 일반 길은 별반 차이가 없다. 몇 년, 몇 개월, 혹은 몇 주 일찍 도착할 뿐이다. 포기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나아간다면 누구나 언젠가는 목적지에 닿는다. 굳이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돌아가는 길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도, 초라한 길도, 편안한 길도 모두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더욱이 빠르게 도착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니다. 들인 노력의 대가가 지나치게 클 수도 있고, 빠르게 도착한 만큼 빠르게 잃어버릴 수도 있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지름길을 선택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급함이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급함. 일찍 도착하고 싶다는 조급함.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급할수록 서두르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는 선택을 해야 한다.


천천히 걸어가도 목적지는 나온다. 굳이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길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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