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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is libris Sep 09. 2020

바가지 쓰는 재미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그날 오후 나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그녀가 최근 내가 달라이 라마와 인터뷰한 것에 대해 물어보자, 나는 아침에 당했던 일을 금세 잊어버렸다. 우리는 달라이 라마가 말한 감정 이입과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함께 알고 지내는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가 출발하는 순간 그날 아침에 있었던 구두닦이 사기단이 다시 떠오르면서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무심코 요금 미터기를 보았다. 


“차를 세워요.” 


내가 소리쳤다. 내 친구는 갑작스런 고함에 놀라 몸을 움찍 했다. 운전사는 짜증난 얼굴로 백미러를 통해 나를 보더니, 계속 차를 몰았다. 

나는 다시 소리쳤다. 


“차를 세우라이까!”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가 떨렸다. 내 친구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마침내 택시가 멈췄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손가락으로 찌르듯 미터기를 가리켰다. 


“당신 미터기를 다시 꺾지 않았어! 우리가 출발할 때 미터기에는 20루피도 넘게 나와 있었다구!” 


그러자 마치 내 화를 돋구려는 듯 운전사는 무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미터기를 다시 꺾는 것을 잊어버렸군요…. 처음으로 돌려놓겠습니다….” 


나는 불쾌한 감정을 폭발시키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소! 난 당신들이 요금을 부풀리고, 일부러, 멀리 돌아가고, 사람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쓰는 것에 질려버렸소…. 난 정말, 정말, 질렸소!” 


나는 광신자처럼 침을 튀기며 격렬한 감정을 발산했다. 친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택시 운전사는 인도의 신성한 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건방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인도의 소들은 복잡한 델리 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일부러 교통을 마비시키려는 듯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서서는 그런 식으로 건방진 표정을 짓곤 했다. 그는 내가 너무 따분해서 신경질을 내기라도 한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앞좌석에 몇 루피를 던진 다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먼저 친구가 내리도록 차 문을 열어주고 그녀를 따라 내렸다. 

잠시 뒤 우리는 다른 택시를 타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러나 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우리가 탄 택시가 델리 거리를 통과하는 동안 나는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델리의 ‘모든 인도인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으며, 우리는 단지 그들의 사냥감일 뿐이라고 투덜거렸다. 친구는 내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글쎄, 20루피라면 우리 돈으로 6백 원밖에 안 되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흥분을 하는 거지?”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배낭 하나를 들춰 메고 길에서 생활하던 때가 떠오른다. 몇 개월을 길 위에서 보내는 중이었다. 천장에 선풍기가 달린 낡은 버스를 타고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주변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침에 버스에 올랐지만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근처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공용 샤워실에서 사워를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팠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이동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마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시장이 열린다는 정보를 주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구경도 하고, 배도 채울 겸 야시장으로 갔다.


시골 야시장답게 사람들로 북적댔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시장 안쪽에서 조그만 국숫집을 발견했다. 매콤한 향이 제법 맛있어 보였다. 가판대에 앞에 앉아 옆 사람이 먹는 국수 그릇을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저거 하나 주세요."


주인아저씨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국수가 나왔다. 한 솥 끓여놓은 국물에 막 삶은 면을 넣은 국수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였다. 배가 고팠는지 금방 한 그릇을 비웠다.


계산을 하기 위해 주인아저씨에게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아저씨는 주문을 받을 때와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100 바트요."라고 대답했다. 국수 한 그릇에 100 바트라니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하루 숙박료가 100 바트가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국수 한 그릇 가격이 100 바트라는 건 바가지가 분명했다. 마침 다른 손님이 국수 한 그릇을 먹고는 20 바트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지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비싸요? 저 사람들은 20 바트를 냈잖아요!"

"현지인은 20 바트고, 여행객은 100 바트예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똑같은 국수를 먹었는데 같은 가격을 받아야죠!"

"외국인 가격이 따로 있어요. 현지인과는 가격이 달라요."


그렇게 높은 금액은 낼 수 없다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다섯 배나 높은 가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억울했다. 국수 한 그릇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외국인이라고 더 높은 금액을 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판대 앞에서 한참 실랑이가 이어졌다. 끝내 100 마트는 내지 못하겠다고 우기는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그럼 50 바트만 받겠다 말했다. 남들보다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지만 50 바트를 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국수 한 그릇 때문에 벌어진 실랑이로 기분이 불쾌해졌다. 현지 물정에 어둡다고 비싸게 바가지를 씌우려는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다른 가게에서 물건을 보고 가라고 낯선 여행객을 잡에 세웠지만 너무 비싸다, 깎아 달라, 현지인 가격과 다르다며 입씨름을 하기 싫어 씩씩거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지금 환율로 따져봐도 3천 원 남짓한 가격이다.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 때문에 따지고, 얼굴을 붉히고, 목소릴 높여 싸웠다. 그리고는 저녁 내내 불쾌한 기분으로 낯선 여행지의 밤을 보냈다.


여행에서 누릴 수 있는 재미는 무엇이 있을까? 낯선 환경에서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재미, 멋진 장관을 즐길 수 있는 재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재미 등 수많은 재미를 즐길 수 있지만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바가지 쓰는 재미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바가지를 쓰는 재미를 알면 여행은 한층 더 즐겁고 만족스러워진다.


삶이 여행이라면 똑같은 공식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3천 원 정도는 당해줄 수 있는 여유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조금 부당하다고 화를 내고, 이해할 수 없다며 따지는 것보다 삶의 행복을 위해서는 바가지를 쓰는 재미를 즐겨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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